마음 속의 갈망
닐 기유메트
"사람들이 더 이상 신앙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가 이 세상 것으로 사람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 바로 그 아편과 같은 믿음이 오히려 위험한 것이다." |
옛날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한 나라에 굴라가라는 완벽한 한 도시가 있었다. 그 도시는 모든 사람이 완벽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아니면 적어도 시장, 시의회, 매스 미디어, 과학자들, 증권 중개인들, 사색가들 그리고 부자들과 부자가 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완벽했다. 물론, 굴라가가 완벽하다는 사실에 대해 반대자들도 몇 명 있었는데, 은퇴한 몇몇 성직자들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론을 형성한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주장하는 것은 굴라가가 완벽한 도시라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무런 문제삼는 일 없이 그냥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고 잘 차려 입은 많은 사람들이 틀릴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굴라가는 왜 완벽하다고 판단하는 것이었을까? 굴라가는 물질적인 안락함,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은밀한 쾌락 등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행복한 상태는, 계급 차별이 없는 평등 사회를 태동시킨 1세기 전의 유혈 사회혁명이 이루어 낸 결과였다. 여기에다, 굴라가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계곡 안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도시의 사색가들은 공공연히 그 산들 너머에는 절대적으로, 완전히 텅 빈 공간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므로 그야말로 굴라가는 문자 그대로 세계의 중심 도시였다.
어떻게 식견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이 주장을 그렇게 확고하게 받아들여 왔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느 누구도 그 주장에 결코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다. 굴라가의 시민들은 많은 일들에 대해 가벼운 논쟁을 즐기곤 했으나 굴라가는 완벽하며, 그 도시의 산들 너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믿음만은 모두가 생각을 같이했다.
물론 굴라가 사람들의 믿음과 같이 단순하고도 순박한 믿음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그 주장을 온 힘을 다해 지키고 있으면서도 주민들 중에는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남몰래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그런 유감을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비애국적인 행동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대부분의 굴라가 사람들은 두 가지 믿음을 무감각하게 말하면서도 깊은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그 믿음에 대해 자신이 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 믿음에 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이 은밀한 비애감은 때때로 불면증으로 드러나곤 했다. 이 잠 못 이루는 밤 깊은 시간에 수많은 굴라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기어나와 베란다로 나와서는 향수에 젖은 눈으로 산들을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서 있곤 했다. 그들은 통절한 상실감에 젖어 이렇게 되뇌곤 했다.
"저 산들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러나 그들은 곧 우울한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는, 어쨌든 적어도 굴라가는 완벽하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침대로 돌아오곤 했다.
이 모든 것은, 이 믿음이 얼마나 오랜 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왔으며, 또한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계속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자기 만족에 젖어 있을 이 도시에 평온을 깨뜨리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홀연히 한 방랑자가 찾아온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이오사스였다.
어떤 도시든 방랑자가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굴라가 사람들에게는 방랑자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방랑자란 외부의 어딘가에서 들어와야만 하는 것인데, 굴라가 사람들은 산들이 바로 우주의 경계선이고 굴라가의 외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랑자란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는 엄연히 살아 있는 신성모독이었다.
게다가 아이오사스라는 이 특이한 방랑자는 모든 거리 모퉁이에서 기쁨에 차서 굴라가의 산들 너머에는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광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이단 중의 이단인) 외쳤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 자신이, 굴라가 사람들이 단지 한 알의 모래 알갱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온 넓고도 믿기 어려운, 경이로운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다.
아이오사스가 기쁜 소식으로 공포한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번개같이 도시 전체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흘이 못 되어 매스 미디어에서는 신중을 기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들은 아이오사스와 인터뷰를 했고, 영악하게도 이 사건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정체불명의 어떤 집단이 교묘하게 꾸며 낸, 이목을 끌기 위한 선전이라고 비중을 두지 않고 가볍게 다루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아이오사스를 호감을 주는 미친 사람 정도로 취급했으며, 전체 사건을 보도 가치가 적은 뒷면에 짧은 단편 기사로 처리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흔히 공교로운 일이 그러하듯, 보도 기관들은 아이오사스가 전체 주민들에게 나타남으로 해서 파급될 충격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판단을 했던 것이다. 사실 굴라가의 모든 가정은 아마도 아이오사스가 굴라가의 산 너머에서 믿을 수 없는 온갖 경이로운 일들을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상한 흥분에 사로잡혔고 그가 한 말을 되풀이해서 입에 올렸다. 마침내 그의 말은 그들 주위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여겨졌고, 더 나아가 아이오사스를 온전한 마음의 소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곧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를 찾아왔고, 이어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떼를 지어 찾아왔으며, 마침내는 걷잡을 수 없이 많은 군중이 그 주위에 모여들었다. 이것은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아무래도 너무 심각한 일이었다. 특히 시민 국가 안전보장 위원회와 과학기술 애국 연합과 같은, 가장 올바른 사고를 한다고 자인하는 단체들이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사태였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정말 어떤 조치가 취해졌다. 어느 날 밤, 아이오사스는 그 도시의 한 공립공원에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가 이단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간단한 심문이 있은 후, 다음 날 아침 사격 부대가 그를 총살할 것이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또한 그와 함께, 이단적 주장을 받아들였던 한 이류 시인과 날품팔이 잡역부 할머니 한 분에게도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이튿날 새벽, 이들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렇지만 이 희생자들의 피투성이 몸에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을 때, 굴라가의 많은 주민들은 소리 없이 짐을 꾸려 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든 없든 그들 자신이 직접 알아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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