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명상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를 지도해 주십시오."
파키미오 대수도원장은 이런 청을 듣고 책에서 눈을 들어 앞에 서 있는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 젊은이가 최근 대수도원 공동체에 새로 들어온 다마스라는 걸 금방 알아보았다.
'흠! 이 젊은이는 그 정도 열의는 있어 뵈는군. 어쩌면 실제로,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힘을 지닌 드문 영혼의 소유자인지 모르지.'
연로한 수도자는 대견한 듯 미소지었다.
"어떤 유형의 명상가가 되고 싶은가, 젊은이? 외적인 명상가인가, 내적인 명상가인가?"
다마스로선 기습적인 질문이었다. 명상가에 두 종류가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신부님. 질문을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파키미오는 젊은이의 반응을 보고 기뻤다. 이 질문하는 태도에 깃든 솔직담백성이야말로 장래에 대한 좋은 조짐이었다.
"물론이지. 외적 명상가란 이런 사람일세. 생활규칙을 준수하고, 성무일도를 외고, 영적인 책들을 읽고, 금식하고, 침묵의 계를 지키고, 기도문을 암송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이지. 반면, 내적 명상가란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든, 어느 분야에서든 만날 수 있네. 당연히, 가끔은 이곳과 같은 수도원에서도 만날 수 있지. 왜냐하면 사람은 외적 명상가인 동시에 내적 명상가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오직 내적 명상가만이 하느님께 이를 수 있다네. 그만이 하느님을 바라보기 때문이지. 자넨 어떤 명상가가 되고 싶은가?"
"내적 명상갑니다, 신부님."
그는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기쁨으로 싱글거리는 원장의 눈빛은 마치 개구쟁이 같은 눈빛이었다.
"오, 아주 좋구먼. 내적 명상가만이 진정한 명상가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진정한 명상가가 될 수 있습니까?"
다마스가 대단히 진지하게 물었다.
"방금도 말했지만, 하느님을 바라봐야 되네."
원장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건 어렵습니까?"
수련 수사가 끈질기게 물었다.
"처음엔 어렵지 않지만 좀 지나면 어렵지."
"얼마나 걸립니까?"
"글쎄, 나름이지. 하느님을 바라보는 끈기에 달렸기도 하지만, 대개는 하느님의 은총에 달렸어. 왜냐하면, 명상 가운데 하느님께 이른다는 것은 순전히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이지. 그러니 당연히 그러한 선물을 내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고, 하늘의 천사일지라도 마찬가지라네."
다마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덕망이 높은 수도원장이 그에게 하고 있는 말은 참으로 이상하게 들렸다. 명상가가 된다는 게 이렇게 겁나는 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의 그 큰 선물을 받기로,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받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질문을 했다.
"제가 언제쯤 명상가가 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신부님?"
"말해 주지, 젊은이. 그때 가서 알고 싶다면 말이네."
"그런데 제가 명상가가 되었다는 것을 원장님은 어떻게 아실 수 있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되다마다. 내가 삼 년마다 자네에게 질문을 해서 그 대답을 들어 보면 알 수 있네."
다마스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질문인데요?"
"아주 간단한 거라네, 젊은이. 이거야.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게 하여 젊은 수련수사의 수행이 시작되었다. 파키미오가 말한 대로 첫 3년은 비교적 쉬웠다. 사실, 다마스에게 그것은 발견의 시기였다. 그는 그의 온 정신과 상상력과 기억력을 성서와 교부들과 교회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통해 하느님을 인식하는 데 쏟아부었다. 당연히, 그는 그 3년 동안 독서와 명상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3년이 다 되어 그의 선도자(先導者)가 물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다마스는 할 말이 많았다.
"하느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무한 존재이시며, 천상과 지상 그 모든 사람들의 모태요 어머니시고…."
그는 계속해서, 하느님에 대해 발견한 것들을 파키미오 앞에 쏟아 내었다. 그가 말을 다 마쳤을 때, 원장은 대견한 듯 젊은이를 보며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훌륭하이, 출발이 좋구먼. 아직 명상가는 아니지만, 언젠가 명상가가 될 수 있는 희망의 싹은 보이네. 온 정성을 다해 계속 기도하게나."
특히 기도에 관한 이 마지막 충고가 그 후 3년 동안 다마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수련 생활의 두 번째 단계는, 첫단계 때보다 더 큰 어려움들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발견한 것은 더 빈약한데다 참신성도 가셨고, 대신 음울한 일상만이 천편일률로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다. 게다가 그는 자기 내부에 죄업(罪業)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깨달음만으로도 상심하기에 충분했을 터였다. 그러나 파키미오가 변함 없이 뒷받침해 준 덕택에, 기분이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하느님을 보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3년 후, 수도 원장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고 물었을 땐, 전보다 말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말할 게 많았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건지시는 자비로운 구원자십니다. 그분은 방탕한 아들의 아버지시요, 죄 많은 우리를 받아 주시는 동정심 많은 분이시고…."
그의 설명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가 말을 다 마치자 파키미오는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나 확실한 언질은 주지 않고 살갑게 말했다.
"아주 잘하고 있네. 자네 생각과는 달리, 자넨 명상의 길에서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네. 하느님 바라보기를 계속해 나가기만 하면 목표에 도달하겠네."
다마스에게 그 다음 3년은 영락 없는 고문이었다. 하느님에 대한 정신 집중이 거의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이라곤 흔적도 없어 보였으며, 심지어 자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분은 왜 나를 거부하고 계신 걸까? 왜 침묵만 지키고 계시는가?'
그런 것들이 번민하는 젊은이의 마음 속에 빈번히 깃드는 의문이었다. 다행히도, 파키미오가 늘 그의 곁에 있어 그를 훈계하며 하느님의 신비로운 방식들을 가르쳐 주었다.
"여보게, 자넨 기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고 말하고 있네. 그래서 영적 독서와 염경기도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고 말이야. 그런 유혹일랑 물리치고 무심(無心) 상태를 견지하게.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우리의 목표는 하느님께 올리는 침묵의 번제사(燔祭祀) 가운데 시간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 전부를 소모시키는 것이니까. 지금이야말로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자넬 당신 자신께 인도하시는 방도를 신뢰할 때네. 하느님 앞에 굳게 서 있게. 필요하면 바위처럼이라도 말이네. 사랑을 다해 충심으로 그분을 바라보게. 하느님 앞에 벌거벗고서 무력하게 서 있기만 하면 돼. 이 모든 것의 비결은 포기하지 않는 걸세."
3년 후, 수도원장이 물었을 때, 다마스는 말할 게 별로 없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냐고요? 그분은 어둠의 계곡에서 나를 인도하시는 나의 목자십니다. 한량없는 지혜로 만사를 처리하시는 믿음직한 분이십니다. 모든 수수께끼의 열쇠이시고, 우리 삶의 안전한 토대이시며…."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곧 깊은 침묵 속에 잠겼다. 다마스의 대답을 들은 파키미오는 크게 만족해하며 이번에도 한껏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자넨 이제 목표에 아주 가까이 와 있네. 그저 흐트러짐 없이 기도만 하게. 나머지는 하느님께 달렸네."
그 뒤 3년은 다마스가 예상했던 것과는 모든 것이 판이했다. 하느님이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 보여서가 아니었다. 반대로, 하느님을 둘러싼 신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어 보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느님이 전보다 더 '분명'하고 '확고'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하면 다마스는 점차 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이'가, 그러니까 한량없이 중요한 그러나 윤곽을 한정할 수 없는 '그분', 혹은 지순한 '누구'가 자신을 마주 대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깊은 확신이 내부에서 커지면서 동시에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이상하게도 의심스럽고, 상대적이고, 부적합해 보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종교, 교회, 성사, 구원 등이 포함되었다. 그는 이제까지 교의나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 왔던 모든 편견과 인습들을, 그러니까 모든 닳아 빠진 언사들과 상투어, 슬로건, 합리화한 사고들을 검토하고 회의해서 마침내는 폐기처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느님께서, 그 어떤 우상이나 인간적 개념도 오직 거룩한 존재만을 위해 마련한 공간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그의 모든 우상을 불사르고 마음 속 지성소(至聖所)를 정화하고 계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침내, 그의 정신이 집착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오직 한 가지, '나는 존재한다.'는 외경스런 말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리하여 수도원장 파키미오가 앞의 그 질문을 했을 때, 다마스에겐 해답이 없었다.
"하느님이 누구시냐고요, 존경하는 신부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분이 누구신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분은 그분 자체이십니다. 내 마음을 캄캄한 어둠 속으로 던져 넣으신 분입니다. 말없는 가운데 저를 끌어안으시는 분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특성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다만 존재하실 뿐입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해서 제가 확실하게 아는 것이라곤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즉, 그분은 내게 속하고 나 또한 그분께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제게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합니다. 제가 명상가가 되든 못 되든 상관 없이 말입니다."
수도원장 파키미오는 그 말을 듣자, 곧 그의 제자가 마침내 바라던 목표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그는 동쪽을 향해 돌아서서 모든 빛의 수여자에게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절을 올린 다음,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를 함께 남겨 둔 채, 자신은 정중한 침묵 속에 물러나왔다.
닐 기유메트ㅡ『땅 끝까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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