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설합

어떤 천사와 여행

마가렛나라 2009. 5. 28. 23:14

어떤 천사와의 여행 

 

작년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기는 장애인인데 빈들에 회원이 될 수 있느냐는 쪽지가 날아왔습니다.

저는 당연히 괜찮다고,

빈들은 열여있는 곳이니까 아무 염려말라고

장애인이든, 비신자든, 신자든 상관없다고

그러니까 마음 편히 빈들에서 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쪽지가 왔습니다.

자기도 가끔 배론을 간다면서

언제 배론 갈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제가 시간을 내어 보겠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늘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몇차례의 쪽지를 주고 받았는데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는 내용과 노신부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겠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기도를 해 주겠다는 말 보다 더 기쁜 말이 어디있겠습니까?

저도 그분의 말씀에 감사하며 기도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빈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요즈음은 월요일 아침에는 아주 예쁜 이모티콘 문자를 보내주십니다.

받으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괜시리 일주일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저도 되도록이면 예쁜 이모티콘을 골라 답을 했습니다.

 

며칠 전 다시 쪽지가 왔습니다.

화요일에 배론을 가는 데 같이 갈 수 있냐고...

같이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에게 쉬울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도 없는데다가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해서

나는 차를 가지고 가는데 님은 어떻게 배론을 다니시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는 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수원역까지 올 수 있냐고 했더니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택시도 많고 복잡한 수원 역전 앞에서 차를 타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일것 같아서

일단 수원역에서 내려 2층 대합실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화요일 아침 혹시라도 먼저와서 오래기다릴까봐 서둘러 애경백화점에 갔습니다.

9시가 약속시간이었는데 부지런히 달려서 8시 반이 채 못되어 애경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일찍 오시느라고 아무래도 아침을 못먹고 나오셨을 것 같아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어디쯤 오시나해서 전화를 했더니 벌써 수원역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모르지만 그분은 나의 사진을 보았기 때문에 나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 분이 저를 보자 얼굴에 화안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생전 처음 만나는데도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안배인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 이분이  카타리나 자매님이구나... 하고

저도 반갑게 맞이하며 서로 인사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배론을 향해 달렸습니다.

카타리나씨는 빈들에서 홍카타리나라고 세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첫눈에 착하고 예쁜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인줄 알아 보았습니다.

 

배론으로 가면서 우리는 간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화장실도 들리고 묵주기도도 하면서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도 참 많이 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눈부시고 들녘은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착한 천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마음 속으로 몇번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달렸습니다.

 

11시가 넘자 이젠  미사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다행히 미사가 11시 반에 시작을 한다는 것입니다. 황급히 서둘러 성당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직까지 입당성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모든 사제들과 돌아가신 노대통령과 빈들가족들과 우리나라를 위해서 ... 

 

 

 

성지 순례객들 중에는 청주교구, 수원교구, 서울교구 등지에서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일 뒤에 앉아서 미사를 드렸기 때문에 아주 특이한 제의를 입으신 신부님의 모습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줌으로 다 땡겼지만 신부님의 제의는 제대로 보이지를 않는군요.

분홍색 제의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분홍색이 아니라 붉은 글씨로 되어있는 제의입니다.

글의 내용은 황사영 백서를 그대로 옮긴 것이랍니다.

 

 

배론성당에는 아주 특별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좌도와 우도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상,

항상 많은 묵상을 하게 하는 고상입니다.

온갖 수모를 겪으시면서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는 예수님,

성부의 뜻을 꼭 이루고야 마는 예수님,

하느님의 뜻도 내 뜻도 이루지못한 저의 삶과

너무나 적절한 순간에 구원을 받는 우도,

요즈음 말로 표현하면 땡잡은 우도의 겸손,

구원의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마는 좌도는 마지막 순간의 선택을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면서...

 

 

카타리나씨가 배론에 오시는 이유는 수녀님을 만나기 위해서랍니다.

수녀님께서 카타리나씨를 어찌나 반가와하면서 맞이하시는지

마치 친언니를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도 아름다우신데 마음도 아름다우신 정말 예쁜 수녀님,

반가운 마음에 카타리나씨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수녀님은 사진을 보시더니 웃어야 되는데 안웃었다고 투덜대셨습니다.

아주 귀엽게... ^^

 

카타리나씨는 작은 베낭 속에서 이것 저것 꺼내서 수녀님을 드리니까

수녀님께서 집에 있는 것은 죄다 가져왔나보다고 하시면서 고맙게 잘 쓰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보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로니모씨에게 가서 연도를 바치고 식당으로 가니

마침 수녀님께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옆자리에 앉아서 우리도 맛있게 점심을 먹었는데 수녀님께서는 순례객들이

수녀님 드시라고 주신 바나나를 기어코 우리에게 주고 가셨습니다.

 

수녀님, 바나나 잘 먹었어요...

 

 

 

배론 성지 오른 편 벽에 걸린 성모자상이 맘에 들어서 찍었습니다.

 

 

청풍에 도착하자마자 공소로 성체조배를 갔습니다.

조배를 하고 나오니

청풍공소 새회장이신 빈들의 사랑하심님도 계시고 총무님 부부도 계셨습니다.

서로 반가와 하며 인사를 하고 카타리나님도 소개를 했습니다.

두분 수녀님께서는 천사가 천사를 데리고 왔네 하시면서 무슨 일을 하시다가 오셨는지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수녀님들께서 뻐찌가 맛있다고 따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우리도 따라 나섰습니다.

저는 체리처럼 큰 뻐찌를 생각했는데 아주 작은 까만 벚꽃 열매를 말씀하신느 것이였습니다.

호숫가를 따라 걸어가면서 잘 익은 나무만 골라서 따 먹는데 손도 입도 다 퍼렇게 되었습니다.

아주 까만 것은 달콤하지만 조금이라도 덜익은 것은 쌉싸름한 맛이 강하고 덜익은 것은 시고 덟고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를 곤두세우고 발뒤꿈치를 들고 휘어진 가지를 붙들고 애를 쓰면서 까만 뻐찌를 따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어느새 6시가 지났습니다.

카타리나씨에게는 세사람이 번갈아가며 손에 놓아주었으니까 아마도 제일 많이 드셨을것 같습니다.

그렇죠 카타리나씨? ㅎㅎㅎ

 

동생이 차려놓은 저녁을 수녀님들과 우리 모두 너무나 맛있게 먹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우리 동생의 손은 마술의 손이라면서 뚝딱하고 손만 대면 뭐든지 너무나 맛있다고 하시면서

정말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된장찌게가 일품이었습니다.

우리 동생이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수녀님들께서도 자랑을 많이 하시면서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하시면서 얼굴이 달라졌다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지 않냐고  하십니다.

제가 봐도 정말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이튿 날 아침 카타리나씨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우며

너무 행복해서 하느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렸다고 몇번이나 말했습니다.

 

청풍 호숫가에 기념 사진이라도 한장 찍고 가자고 들어왔습니다. 마침 젊은 한쌍의 연인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사진을 찍었다는데 허당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두번째로 찍은 사진인데 사진을 찍어주신 분의 말씀이 더 웃깁니다.

'태여나서 처음 찍어본 것인데 어렵네'라고 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카타리나씨는 정말 천사였습니다.

오른 손이 불편할 뿐이고 걸음이 조금 느린편입니다.

 

어느 날 본당신부님께서 반장을 하라고 하셔서 반장을 했답니다.

다음 신부님이 오시자 마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어떤 자매님이

병신이 무슨 반장을 한다고 그러냐고 해서 카타리나씨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답니다.

상처를 받았지만 그럴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모든 수모를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장일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타리나씨는 아주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교육을 받아서 정말  건강하고 착하게 잘 사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때는 친구들로부터, 커서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부터 장애인이라고 무시하고 더럽다고 욕하고

놀리고 하는 것은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장애인들도 걱정이 없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걱정이랍니다.

주로 형제들이 장애인 동생을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합니다.

 

한번은 친구가 전화를 해서 자기가 지금 이천에 버려졌다고 와서 좀 데려가달라고 하더랍니다.

본래 집은 서울인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큰오빠와 올케언니가 서울로 못찾아오게 할려고

이천까지 와서 길에다 그냥 버리고 돌아 갔답니다.

그 친구를 데리고 카타리나씨 집으로 가서 여기저기 복지단체에 친구가 있을 만한 곳을 찾고 있는데

그 답이 오기도 전에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답니다.

어찌나 가슴이 아픈지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때문에 사는가?

왜 아무도 의지할데가 없는 장애자를 버리는가?

 

 

하루는 카타리나씨도 남들처럼 화장을 하고 싶어하니까 아버지가 카타리나씨를 부르시더니

"카타리나야, 너는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절대로 화장을 할 필요가 없단다.

너는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주 예뻐. 마음도 예쁘고 얼굴도 예뻐..." 그러시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는 지금까지 화장을 하지않는다고 합니다.

너무나 훌륭하신 아버님이셨습니다.

 

처음 신앙을 갖게 된것은 이문근 신부님의 이모님을 따라서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타리나씨가 세례를 제일 먼저 받았고 그다음이 어머니 , 아버지, 오빠들 순으로 칠남매가

모두 다 세례를 받아 하느니믜 자녀가 되고 성가정이 되었답니다.

 

카타리나씨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참고 견딘다면서

지금은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한다고 합니다.

마리수산나 수녀님 말씀처럼 저도 이제는 훌륭한 영적 후원자가 생겨서 너무나 기쁩니다.

 

카타리나씨,

짧은 1박2일 동안 저에게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주셨고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천사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마음의 장애자(불구자)이지만

당신의 마음은 천사였습니다.

님의 말대로 주님께서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고

항상 지금처럼 그렇게 밝게 기쁘게 그리고 더 행복하게 사세요...

 

천사를 만나 행복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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