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도 바다가 있었다.
갤러리 La Mer 에는
화가 이 정순님의 그림들이 한 가득 펼쳐져 있었다.
심연에서 건져올린 것같은 그 그림들에는
그리움과 초연함과... 어쩌면 갈망이 있었다.
그녀의 삶의 바다에 부유하던 기쁨과 슬픔의 조각들을 거두어
또는 파도에 몸을 맡기긴 할지언정 쉽사리 휩쓸리지 않는 물풀같은 것들을
하나씩 캐어 말려서 화폭을 채운 듯한
그리고 마침내 환희의 빛을 뿌린 듯한
아름다운 그림들을 마음에 담았다.
오늘 나는 한가로이 거닐며 그 그림들을 향유하지만
그녀의 어제는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아프고 고되었을지 모르겠다.
막 씻긴 갓난아기를 바라보며 화가는 지금쯤 해산의 고통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가녀린 모습에서
한번 스쳤을 뿐인 왕자를 사랑한 나머지
뼈와 살이 갈라지는 고통을 감수하고 인간이 되었던
슬퍼서 아름다운 전설의 인어공주를 떠올렸다.
동화 속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나의 인어공주는 물고기의 꼬리를 가졌든, 말을 하든 못하든
그녀만을 사랑하는 그분을 만났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