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위령성월이다
그리고
2일은 위령의 날이다.
미사를 하고
우리엄마 산소에 들렸다.
기도를 하고나자
작은언니가 목놓아 울었다.
언제 또 엄마를 찾아올 수 있을까 하면서...
큰언니도 울고 나도 울고...
그래서인지
두분의 얼굴표정이 우울모드다.
이조참판을 지내신 우리 고조부님의 산소다.
어릴 때는 참판옷을 입고 찍으신 사진으로 보았는데
그 사진이 지금은 어느 집에 있는지 볼 수가 없다.
종가집의 사진을 가져간 일가친척은
하루 빨리 그 원본사진을 종손에게 돌려주시기를 희망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개똥을 주워서 논과 밭에 뿌려
소출을 두배로 늘리셔서
만석군이 되셨다는 증조할아버지 산소다.
가실성당 지을 때도 엄청난 돈을 기부하셨고
성주본당을 지을때도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기부하셨고
팔남매를 낳으셔서 둘째 아들만 농사를 짓게하기위해 공부를 안시키시고
막내딸까지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셔서 여의사를 만드신 분이시란다.
큰아들은 와세다 미술부
셋째 아들은 경성제대 (유진오박사와 동문)
넷째아들은 동경제대 의학부
막내아들도 동경제대 출신이시다.
일제시대에 아들들을 다 유학보내신 진짜 신지식인이시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공경하며 사셨던 분으로써
신자가 되면 전답을 부치게 하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여기는 우리 친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고...
미대출신이신 할아버지의 훌륭한 그림들을
할머니가 다 태워버리셨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아까운 그림들이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산소가 모셔져 있다.
주병환 할아버지 산소다.
셋째아들이셨던 할아버지는 경성제대 출신이시고
유진오 박사와 동문이시고
고이효상 국회의장과 같이 정치활동하신 분이시다.
(민주당의원으로 활동하셔서 419가 일어나던 날
큰언니의 결혼식에서 술만 한잔 드시고
급히 나가시던 기억이 난다.)
아들하나 딸하나를 두셨으나
현재는 모두 미국에 살고 계신다.
돌아가신 모든 조상님들께 하느님의 자비가 있으시기를 빌면서
산소 하나 하나를 둘러보며 기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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