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마가렛나라 2008. 8. 1. 17:10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1. 스토아 학파

(1) 스토아 학파의 정의와 구분

(2) 유물론과 범신론적인 세계관

(3) 인간관과 윤리학

2. 에피쿠로스 학파

(1)에피쿠로스학파의 정의

(2)형이상학과 인식론

(3)에피쿠로스주의

3. 회의학파

4. 쾌락주의와 금욕주의

 

 

1. 스토아 학파

 

(1) 스토아학파의 정의와 구분

 

 에피쿠로스학파와 마찬가지로 스토아학파는 전대의 철학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자연관에 있어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와 변화에 관한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하면서 윤리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특히 퀴닉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 이 학파의 명칭은 북아프리카 출신인 제논이 아테네에서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건축물인 주랑(柱廊, 포이킬레, 현관)에서 가르침을 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스토에피쿠로스 학파와 나란히 나타난, 헬레니즘-로마 시대, 즉 고대 그리스 시대 말기에서 로마지배 시대에 걸치는 당시의 대표적 철학 유파. 이 파는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①초기 스토아 학파(스토아라는 명칭은 그 학교가 있었던 장소가 스토아 포이킬레였던 것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3세기의 키프로스의 제논에서 시작되고 뒤이어 크리스포스를 대표자로 한다. 철학을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의 세 부문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 윤리학에 중점을 두었다. 스토아 학파는 금욕적이고, 또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세계주의적이기도 한 사상인데, 그것은 당시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세계 이성의 지배라는 것으로부터 인간의 숙명이라는 견? 巒? 신의 섭리에 대한 종교적 헌신의 사상도 생길 소지가 있었다. ②중기 스토아 학파: 기원전 2세기의 로도스의 파나이티오스를 대표자로 하고, 운명, 그리고 사회적 억압에의 수동적인 인종(忍從)이라는 지배계급의 뜻에 부합되는 사상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그 자연법적 사상은 로마 법학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③후기 스토아 학파: 1세기의 제정 로마에 이르러, 이 제국의 세계국가론의 기초가 되고, 또 쇠퇴하고 있는 노예제 속에서 생활하는 귀족들에게 자연과의 명상적 합일, 내면적 자유에로의 침잠이라는 도피적인 정신적 위안을 주는 관념론으로 변질하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 내에 보급하는 길을 닦았다. 그 대표자에는 세네카, 에피크테토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있다.

 

(2) 유물론과 범신론적인 세계관

 

 스토아 철학자들의 자연세계에 관한 기본적인 사고 방식은 낙관주의적이며 형이상학의 내용은 유신론과 유물론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사상들이 교묘히 결합된 범신론이다. 그들이 생각한 우주의 참모습은 자연의 이법(理法)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잘 조화되어 변화하는 코스모스로 파악하였다. 우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시간 속에서 발생했고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끝없는 세계이다. 자연 속의 사물들은 공기, 물, 흙, 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요소는 불이다. 불은 물질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생동하는 신적 원리, 즉 로고스(logos)로서 세계의 모든 존재 속에 스며 있는 세계 영혼이다. 자체로 완전하고 영원하며 질서정연한 물질적인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 이성은 곧 신이라고도 불리운다. 프네우마, 예견, 운명도 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스토아철학은 신 즉 자연이라는 범신론적인 주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스 토아 사상의 신은 유신론의 신과 유사하게 완전하고 최고선이며 인격을 갖추고 인간에게 복과 징벌을 내린다. 그러나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유신론의 대표적인 유일신론에서 말하는 신은 창조주로서 세계 바깥에 자유롭게 존재하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세계를 만들어 내었지만 범신론에서는 신이 세계 바깥에 초월해 있지 않고 세계 곳곳에 스며들어 내재해 있다. 그리고 창조주로서의 신이라는 개념도 부정한다. 우주를 창조했다는 말은 소위 신의 무한성을 훼손시킨다. 무한한 속성을 지닌 신이 자신 밖에 따로 세계를 만들었다면 창조 행위로 나타나는 결과의 세계는 신 이상의 것이 된다. 이는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넘어선 세계를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불가능하며, 더구나 무한한 신에 유한한 세계를 더한다는 것은 신의 무한성 개념과 모순되기 때문에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은 신의 무한성을 모독한 결과를 자초한다. 그리하여 범신론은 유일신론과 달리 신은 생성 변화해 가는 자연과정의 필연적인 실체로서 우주만물에 내재한다고 이해한다.

 

(3) 인간관과 윤리학 - 이성주의와 금욕주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성의 법칙에 의해 운행하는 자연에 대한 사고와 다르게 인간과 삶에 대하여는 비관주의적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신적 이성이 지배하는 자연 속에서 이성을 공유하고 있는 점에서 신의 일부이다. 소우주에 해당하는 인간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이성법칙에 따라야만 인간의 타고난 자연적인 본성에 부합된다. 이성적 영혼이 인간을 지배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고 행복하다. 이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비이성적인 부분 즉, 감정, 욕구, 정념을 지배케 함으로써 자연법에 일치시키고 인간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알맞은 의무를 드러내고 실천하게 만듬으로써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삶의 최고 목표는 실천적 덕이다. 덕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며, 일체의 존재에 대한 지혜로운 통찰과 동일한 것이다.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덕을 목표로 삼을 때 행복은 달성된다. 이러한 이성에 투철하고자 하는 철학은 헬레니즘이란 무대배경을 통하여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성적인 자연세계는 한치의 빈틈도 없이 이성법칙에 따라 질서있게 조화를 이루는 결정론적인 세계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세계는 전쟁과 패배, 불행과 고통으로 점철되는 무질서의 세계이다. 더 이상 인간은 일상적인 행복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세속적인 성공과 행복의 성취는 우리의 능력 밖에 머문다. 따라서 스토아학파에서 말하는 행복은 능력의 발휘보다는 인간의 욕구를 억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혼돈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이성에 따라 통찰하고 운명을 감수하며, 의지의 힘으로 현실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다. 삶의 목적은 오로지 이성의 의한 냉담한 부동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는 육체적인 욕구, 충동, 정서로부터 해방된 자유이며 인간영혼의 덕인 것이다. 스토아철학 초기의 비관적이고 숙명론적인 성격은 로마? 척肉?접어들면서 건실한 로마의 정신으로 변모하여 사회에 대한 엄격한 의무감, 동포애, 윤리적인 사명감을 대변하게 된다.

 

 

2. 에피쿠로스학파

 

(1) 에피쿠로스학파의 정의

 

 에피쿠로스학파는 스토아학파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아테네인 에피쿠로스에 의해 성립되었다. 이 학파의 교설도 대부분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에 의존한다.

 

(2) 형이상학과 인식론

 

 에피쿠로스 철학은 세계에 대해서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인식의 문제에 관해서는 감각주의를 따른다. 세계는 물체와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체들은 원래 원자들의 덩어리에서 생긴다. 원자들의 소용돌이 운동에 의해서 무거운 원자들과 가벼운 원자 등이 서로 분리되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가 태어난 것이다. 무에서 유로의 창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자와 빈 공간은 무한하다. 이는 또한 존재 가능한 세계도 무한하다는 의미가 된다. 물체의 기원, 생성과 소멸은 원자의 이합집산으로 설명될 수 있다. 원자는 더 이상의 분할이 불가능하고 지각될 수 없는 최소의 물리적 입자로서 각각의 형태, 무게, 크기를 가지고서 전체적으로는 하향운동을 한다. 평행을 이루면서 공간을 따라 아래로 떨어지면서 얼마간의 원자들끼리 상호작용 즉 충돌과 혼합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물체의 생성 및 변화가 형성된다. 에피쿠로스는 사람의 모든 인식은 감각적 지각으로부터 생긴다고 본다. 그래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이성적(합리적) 인식을 부정한다. 모든 인식은 사물에서 나온 상(像)들이 감각 기관의 구멍들을 통해서 성립하기 때문에 ! 자연적 사물과 독립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이성적 인식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이 사물을 가리키는 개념이란 무엇인가.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는 기억에 고정된 감각의 인상을 개념이라고 한다. 개념이 진리이기 위해서는 언제나 개념이 감각적 지각에 의해서 확인, 검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감각주의적 인식의 이론은 감각적 지각을 인식의 기준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칫하면 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론에 빠질 경향이 있다.

 

(3) 윤리학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핵심을 이루는 내용은 윤리학이다. 스토아철학과는 다르게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쾌락주의에 기초한다. 삶은 행복을 목표로 삼고 행복은 곧 쾌락이다. 쾌락은 이전의 키레네학파에서 주장되는 육체적이고 감각에 의존하는 쾌락이 아니고 보다 세련된 쾌락으로 제시된다. 원래 쾌락주의의 모토는 '쾌락은 추구하고 고통은 회피하라'로 표현된다. 쾌락에 대한 적극적인 추구는 더 이상 시대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므로, 그가 추구하는 쾌락은 마음의 평정(ataraxia)으로 시대적 현실에 대한 절망과 체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쾌락은 죽음과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로운 상태이고 이를 실현시키는 데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요청된다. 스토아철학은 불멸의 신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인간에게는 죄의식과 신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정신의 불안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에피쿠로스는 신에 대하여 원자론을 바탕으로 말한다. 신은 다른 사물과 같이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바깥에 원자가 없는 빈 공간에 존재하므로 이 세상과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공포는 쓸데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이와 유사하다. 이 세계에서 생성과 소멸은 원자의 결합과 분산에 의한 현상이다. 죽음이란 것도 모여있는 원자가 흩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므로 죽음으로 인한 공포도 무의미한 것이다. 그 외에 그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상생활의 지침으로 은둔생활을 권고하였다. 모든 세속적인 가치와 직무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우정에 기초한 사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난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로마시대에 시인 루크레티우스 카루스(BC 95경~55)와 호라치우스가 그의 철학을 계승한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rerum natura〉라는 시에서 에피쿠로스 철학을 전파하였다.

 

(4) 에피쿠로스주의

 

 본래는 에피쿠로스의 학설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그가 주장하는 쾌락주의가 전용되어 감각적 향락주의, 즉 육체탐닉이라든가 식도락 등을 의미하게 되었고, 에피쿠로스주의자라는 명칭도 이러한 향락주의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다. 이것은 관념론자들이 유물론을 공격하는 재료로도 삼아 왔다. 또 원자론이나 무신론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3. 회의학파

 

 헬레니즘시대에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와 함께 등장한 철학은 회의론이다. 동시대의 두 철학과 대등한 입장에서 또 다른 인생철학을 제시한 것이기보다 두 철학의 비판자로서의 입지가 크다. 인물이 학파에는 창시자 엘리스의 피론(Pyrrhon von elis, BC.365-275)과 그의 제자인 티몬(BC 325 - 235)이 있다. 이후 회의주의는 플라톤이 설립했던 아카데미학파 중기에 이르러 흡수되었고 후기는 아이네시데무스(BC 1C), 섹스투스 엠피리쿠스(BC 1 -2C) 등이 해당된다. 피론이 창시한 회의주의도 당대의 철학의 관심사와 다르지 않다. 그의 관심사는 영혼의 안식이지만 이를 위해 회의라는 방법론을 내세운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제자로서 메가라학파, 엘리스학파와 인도의 요기에 대한 경험을 통해 스토아철학과 에피쿠로스학파와 달리 인생철학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보다는 부정의 철학으로 독단적인 교설을 피할 것과 판단중지(그리스어 epoche)를 주장하였다. 철학에서 회의적 경향은 피론 이전에도 뿌리가 깊은 것인데 소피스트와 메가라학파의 궤변들은 주관주의와 상대주의에 근거하여 회의주의와 관련이 있으며, 이와는 다르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론 또한 무지의 자각이라는 회의의 측면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피론은 인간의 인식과 판단은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상반된 언설과 주장사이에서 방황하고 정신적인 불안을 겪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감각을 넘어선 사물의 실체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없으며, 감각으로 지각한 것도 주관적이기 때문에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참·거짓에 대한 확실한 판단의 기준이 없다면 결국 인간은 모든 것에 대한 판단중지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해 시대적 환경에서 벗어난 마음의 부동과 무관심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아이네시데무스(Aenesidemus, BC 약 1세기)는 독단적인 교설에 대한 믿음을 보류시키기 위하여 회의의 10가지 논리적 논거를 제시하였다. 서로 다른 존재들, 개인, 감각, 현실의 상태, 상황 및 환경, 사물의 존재방식, 시간적인 변화, 사물간의 관계, 현상의 빈도, 사회적 통념과 주체의 판단에 따라서 판단의 양상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하여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섹스토스 엠피리코스(Sextus Empiricus, BC 약 200-250)는 로마의 의사로 치료를 위하여 독단론과 실증적 태도를 버리고 판단을 중지할 것을 주장한다. 〈독단론에 맞서 Pros dogmatikous〉라는 저작에서 당시의 여러 철학에 대한 폭넓은 글을 인용하였다

 

4. 쾌락주의와 금욕주의

 

  -쾌락주의- 쾌락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모든 행동과 의무의 기준으로 보는 윤리학의 입장. 행복주의의 한 형태로 키레네학파, 특히 아리스티포스는 순간적 쾌락만이 선(善)이라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쾌락을 취하는 데 행복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에 반해 에피쿠로스는 그러한 감각적·순간적 쾌락을 부정하고, 지고선(至高善)인 쾌락은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면서 아타락시아를 역설하고 쾌락의 질적 구별을 인정하였다. 금욕적인 생활을 한 에피쿠로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오해는 쾌락주의에 대한 편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의 이 두 학파는 쾌락주의의 두 전형이며 근대에 와서 벤담은 여기에 사회적 관점을 도입하였다. 그는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쾌락의 양적(量的) 차(差)에 바탕을 둔 쾌락계산(快樂計算)을 제창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였다. 또한 물질적 쾌락의 추구는 많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고 더 많은 고통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쾌락을 버리는 일이야말로 쾌락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나오게 되는데, 이런 생각을 쾌락주의적 역설이라고 한다. 또한 미학(美學) 영역에서 미적 쾌락을 미의 본질적 요소라고 하는 설을 미적 쾌락주의라고 한다.

  

  -금욕주의- 인간의 정신적·육체적인 욕구나 욕망을 이성(理性)이나 의지로 억제하고 금함으로써 도덕이나 종교상의 이상을 성취시키려는 사상이나 태도. 금욕을 뜻하는 금제(禁制)가 따르는 연습·수련을 말하는데, 이에서 유래되는 금욕주의에는 2가지 경우가 있다. ① 어떤 궁극적인 목적을 위하여 몸을 단련시킨다는 본래의 뜻과, ② 육체에 대한 불신(不信)에서 몸을 파괴하거나 그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금욕주의의 역사에는 이 두 가지 전혀 다른 견해가 섞여 있다. 원래 금욕주의는 의지가 생활 앞에 내세우는 이성의 명령과, 생활 속에 있는 자연적인 여러 가지 욕구와의 모순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모순은 당연히 고통이나 불쾌감을 수반하게 되므로,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육체를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단련시키거나, 영혼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보아 이를 제거하려고 한다.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이원론(二元論)은 인생을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싸움터로 보고 후자의 소멸에 의한 전자의 승리를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와 결부된 금욕주의가 이원론적 금욕주의이다. 여기서는 금욕은 선(善)의 근원이며, 감성(感性:충동·욕망)은 악의 인연(因緣)으로 보고, 후자의 억압이 도덕생활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감성 그 자체를 악으로 볼 때에는 금욕의 정도가 극단적으로 기울어 마침내 고행(苦行)을 적극적인 선(善)으로 생각하는 입장이 된다. 피타고라스파(派), 퀴닉파, 스토아파, 중세의 수도원 생활, 쇼펜하우어의 윤리설, 간디의 순결사상 등은 모두 이런 뜻의 금욕주의 계통에 속한다. 한편, 칸트는 수도사의 금욕은 덕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광신적 속죄(狂信的贖罪)를 꾀하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하여 본원적인 도덕적 금욕이 있다는 것을, 스토아파의“인생의 우연한 화악(禍惡)에 견디고 쓸데없는 오락이 없어도 지낼 수 있도록 길들여라”라는 격언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도덕적 금욕은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양생법(養生法)으로서, 자연충동에 대한 투쟁과 그 지배가 인간을 건전하게 만들고 재차 획득한 자유의식이 사람을 기쁘게 해준다고 강조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일부 사람만이 영원한 구원으로 선택된다는 J.칼뱅 등 예정설(豫定說)과 결부시켜, 자기가 선택되었다는 확증을 일상생활에서 구하고 있다. 인간은 신의 은총에 의하여 주어진 재화(財貨)의 관리자, 영리추구의 기계로서의 의무를 지게 되며, 금욕은 목적으로서의 부(富)의 추구를 악(惡)이라고 배척하면서도 부의 추구를 직업노동의 성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팽창되어가고 있는 시민사회의 윤리로서 반권위적 성격을 가지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절대주의적 봉건사회에 항의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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