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설합

눈에 대한 몇가지 추억

마가렛나라 2019. 2. 15. 23:53

낮에는 낙엽을 태우는 바람에

운동할 시간을 내지못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완전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가 차가우면서도 짜릿한 상쾌함을 준다.

오늘 밤도 눈을 맞으며 걸어본다.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강아지랑 같이 뛰어다니며 좋아했고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에

발자욱으로 꽃을 만들며 즐기기도 하고 솜이불 같은 포근함에 눈위에 누워서 내리는 눈을 얼굴로

맞기도 했다.

눈사람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드나 내기도 했다.

 

어느 해나 그 해에 첫눈이 내리면 더 신나고 즐거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이 나이에도 밤눈을 맞는 것이 즐겁고 신나니 말이다.

젊은 시절 어느 해 겨울 방학이었다.

막내의 가정교사가 입주를 하고 있었다.

포근한 겨울 밤 

저녁을 먹고 났는데  밤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사랑을 만나도 이처럼 반가울까?

얼른 코트를 걸치고 마후라를 쓰고 목을 칭칭감고 밤눈을 맞으려고 나갔다.

친구랑 가정교사랑 셋이서

우린 눈을 맞으며 신나게 조잘대며 호호거리면서 한시간 가량을 걷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그 눈밭을 걸으며 눈을 맞은 소감이나 느낌을 써서 교환하자고 했다.

문학소녀라도 되는냥 눈을 맞는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은  첫사랑 처럼 사랑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아름다운 하얀 눈세상이 천국 같고

친구랑 함께 걷는 기분은 인생의 동반자가  있어서 좋았다는 둥

따스한 방으로 들어오니 어느새 눈은 녹아서 변절했다는 둥 

 뭐 그런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직장을 다닐 때 하얀 첫 눈이 내린 밤

퇴근길에 직장 동료와 함께 여의도 광장으로 갔다.

온세상이 눈천지다.

그 때는 여의도가 개발되기 전이라 넓은 비행장에 비행기는 김포공항으로 가고

텅빈 여의도 광장은 온통 눈으로 덮혀  하얀 눈세상만 남아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눈이 내리는 밤은 늘 포근하다.

그 넓은 눈세상에 우리 둘 뿐이었고 좋아서 소리지르며 눈밭에서 딩굴고 뛰어 다녔다.

이미 나이는 잊어버리고....

하얀 눈세상이 모두 내것인듯 마음이 풍요와 행복으로 가득찼던 날이다.

그 날 같이 간 직원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분께 죄송!

 

결혼을 하고 신혼인 때다.

첫 눈이 내린 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분이 좋아서 흥분된 목소리로

" 봐요, 첫눈이 펑펑 내려요."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바쁘다. 전화 끊어요"

밤내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이랑 대학로에 연극공연을 보러 갔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함박눈이 쏟아진다.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긴 목도리가 필요했다.

내 코트와 잘 어울리는 갈색의 긴 목도리를 샀다.

키큰 남자 옆에 조그만 여자가 짧은 다리로 따라가며 마로니에 공원을

눈을 맞으며 걸었다.

연극은 제목도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둘이 함께 걸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 날 산 목도리는 아들신부에게 주었다.

 

 

아들이 신학교에 합격을 했다는 통보를 받고

아들과 둘이서 대구로 갔다.

작은 삼촌 댁에서 신학교에 간다고 인사를 하고

큰이모네로 가는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와이퍼로 밀어도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우리를 향해서만 달려온다.

"아들, 우리 너무 멋진 드라이브다 그치?

이 아름다운 밤을 평생 잊지못할거야" 그랬다.

글쎄 지금 아들신부는 그날을 기억할까? ㅎㅎ

 

 

 

눈이 오면 잊을 수 없는 날이 또 있다.

안젤라 언니랑 둘이서 죽산성지를 갔다.

미사를 하고 나니 갑자기 눈발이 하나 둘 바람에 날린다.

흐린 하늘을 보니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그냥 집으로 가야할 것 같아서  얼른  차를 몰았다.

호법쯤 오니까 제법 눈이 많이 내리며 길에 약간씩 눈이 쌓인다.

눈송이가 주먹만하게 보이기도 하고 펑펑 내리니 무섭기도 했다.

양지 근처에 오니 어느 새 눈은 수북히 쌓여서 차들이 가지를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가면서도

여기 저기에서 서로 부딧치며  충돌사고가 벌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무섭고 겁이 나는지 내차 가까이 차가 오면 금방 내차에 박을 것 같아서 소리지르며

"어머 어머 어떻게 해 가까이 온다 온다 "를 연발했다.

이제 모든 차들이  달리지를 않고 조심스레 살살 기어갈 뿐이다.

군포를 빠져나오는데 앞에 가던 차가 혼자서 미끄러지면서 쿵 하고 길가에 부딧쳤다.

혼자 내는 사고도 많지만 가까이 올까봐 그게 더 무서웠다.

다행히 날씨가 포근해서 군포를 빠져나오니 길은 질퍽거리며 눈들이 녹고 있었다.

 무사히  아무 사고없이 집에는 잘 도착했다.

아마도 성지에 다녀왔고 오면서 차 안에서 성모님께 빌고 또 빈 우리의 작은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눈내리는 날이 좋다.

눈내리는 밤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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