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과달루페 성모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과학자들도 "인간의 손으로 그린 그림 아니다"고 결론 내려 멕시코를 사목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멕시코 도착 이튿날인 13일 과달루페 성모대성당에 찾아가 과달루페 성모를 경배했다. 과달루페 성모는 최북단 알래스카에서 최남단 파타고니아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자다. 교황은 이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신문방송사 기자들과 카메라를 뒤로하고, 홀로 20여 분간 과달루페 성모화 앞에서 개인기도를 바쳤다. “그 앞에서 잠시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이례적으로 출발 전에 멕시코 교회에 요청했다. 교황은 12일 멕시코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수행 기자들 앞에서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의 가장 큰 소망은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인간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인 과달루페 성모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과학자들도 성모님 형상은 ‘하느님의 것’이라고 말했어요.”(My deepest desire is to pause before Our Lady of Guadalupe, this mystery that is studied, and studied, and studied, and there is no human explanation. Even scientists say the image is ‘a thing of God.’) ‘인간적 설명이 불가능한’ 과달루페 성모를 만나러 멕시코시티로 떠나보자.
▶가톨릭 신자 89%, 과달루페노 100% 1531년 12월 9일, 멕시코시티의 작은 언덕 테페약. 승천한 성모 마리아는 그날 최초로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 루르드와 포르투갈 파티마보다 300~400년 앞서 그 언덕에서 가난한 농부 후안 디에고(St. Juan Diego)에게 발현한 것이다. 역사상 과달루페 성모 발현만큼 파장이 컸던 발현은 없다. 태양신과 잡신을 숭배하던 아즈텍인 800여만 명이 발현 7년 만에 거의 전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테페약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멕시코시티는 눈부시다. 강한 햇살에 중남미 특유의 화려한 색감이 더해져서다. 언덕 아래 도시는 아즈텍 문명 유적과 스페인 식민시대의 중세풍 건물, 그리고 현대문명의 소음이 뒤섞여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멕시코인들은 오늘도 줄지어 테페약 언덕을 오른다. 정복자들이 파괴한 아즈텍 신전에서 실어다 깔았을 법한 돌계단이 반들반들 윤이 난다. 과달루페 성모 축일(12월 12일)에는 전국에서 300여만 명이 모여든다. 멕시코인들의 과달루페 성모 신심은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다. 집이건 택시건 거리건 어디를 가나 과달루페 성모화가 눈에 띈다. 심지어 조폭들도 등과 팔뚝에 과달루페 성모 문신을 하고 다닌다. “멕시코 가톨릭 신자는 89%, 과달루페노는 100%”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성모님이 보내신 장미꽃입니다” 1531년 12월 9일 이른 아침, 57살 후안 디에고는 평소처럼 아침 미사에 참례하려고 테페약 언덕을 넘고 있었다. 황량한 언덕에서 갑자기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가 싶어 꼭대기로 올라가 봤더니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도움을 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의 어머니다. 너희가 나의 사랑과 자비,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란다. 주교관에 가서 내 말을 전해라.” 디에고는 그 여인의 말대로 주교관으로 달려갔다. 스페인 출신의 멕시코 초대 주교인 후안 데 마라가는 그의 얘기를 믿지 않았다. 풀이 죽은 디에고는 다시 테페약 언덕으로 돌아가 성모를 만났다. 그 다음 날, 디에고는 주교관 앞에서 또 문전박대를 당했다. 주교는 “증거를 갖고 오면 믿겠다”고 했다. 디에고는 성모가 시키는 대로 형형색색의 장미꽃을 따서 자신의 틸마(인디오들의 긴 망토)에 담아서 주교를 다시 찾아갔다. “성모님이 보내신 꽃입니다. 받아주십시오.” 디에고가 망토를 펼쳐 보이자 주교는 깜짝 놀라 무릎을 꿇었다. 갈색 피부의 원주민 처녀 형상이 틸마에 선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성모는 고대 아스텍인들의 언어인 나와뜰(Nahuatl)어로 말했다. 주된 메시지는 “너희 어머니인 내가 여기에 있지 않으냐. 나는 너희가 겪는 고난과 내가 명한 일을 이루기 위해 겪는 노고를 경사가 되게 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과달루페의 뜻은 ‘테 콰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 즉 ‘돌뱀을 쳐부수다’라는 성모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는 학설이 정설이다. 돌뱀은 아즈텍인들이 섬기던 날개돋친 뱀(퀘트잘코틀)을 말한다. 아즈텍인들은 해마다 2만 명 이상의 여자와 아이들을 이 신에게 피의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성모는 돌뱀의 우상을 물리치고 라틴아메리카를 당신 보호 아래 두고 싶어 하신 것이다. 더군다나 인디오들은 정복자들의 강제노역과 착취에 죽어가고 있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자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해양 강국들은 ‘황금의 땅’ 라틴아메리카로 몰려갔다. 성모는 스페인 코르테스 군대가 아즈텍 영토에 발을 들여놓은 지 꼭 10년 만에 발현했다. 그런데 왜 늙고 가난한 인디오에게 발현한 것일까. 디에고는 주교가 계속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성모에게 “저처럼 비천한 사람 대신 모든 이들이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성모는 “너는 내게 많은 천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의 중재와 도움으로 내 뜻을 이룰 필요가 있기에 너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과달루페외방선교회 마요한 신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즈텍 주인이 하루아침에 바뀌자 백성들은 희망을 잃은 채 전염병과 자살로 죽어갔다. 정복자들이 태양신을 섬기던 피라미드 신전 등을 파괴하자 큰 혼란에 빠졌다. 그때부터 과달루페 성모를 통해 기적과 치유가 이어졌다. 성모는 우상숭배의 어둠과 정복자들의 폭력으로부터 라틴아메리카를 보호하고자 하셨다.”
▶성모 형상에 충격받은 과학자들 2002년 후안 디에고가 성인품에 오를 때 일각에서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정복자들이 인디오들의 개종을 유도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주장이었다. 마 요한 신부는 조목조목 반박한다. “디에고의 증언은 스페인어가 아니라 인디오들의 언어로 채록됐다. 그리고 스페인 교회가 꾸며냈다면 왜 자국의 주교가 발현을 의심했겠는가. 교회는 발현을 즉시 인정하지 않고 훨씬 나중에야 공인했다.” 더구나 성모화(성모 형상)는 현대과학으로 풀 수 없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디에고의 망토에 새겨진 성모의 키는 1m 45㎝, 피부는 거무스름한 황갈색, 머리카락은 검은색이다. 1979년 적외선을 이용해 형상을 조사한 미국 과학자들은 “인간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도료나 붓질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자들은 특히 성모의 눈을 우주광학 기술로 2500배 확대해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홍채와 동공에 동일 인물들이 비쳤기 때문이다. 디에고가 망토를 펼쳤던 순간과 몇몇 인디오 가족들이 보였다. 과학자들은 “성모의 눈은 즉석 사진기처럼 눈앞의 형상을 그대로 포착했다”고 밝혔다.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성모 형상의 섬유조직과 형태, 색감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교황이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인간적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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