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따라

노수사와 아가씨 3

마가렛나라 2008. 4. 9. 17:11

세상에 태여나서 이렇게 신기한 체험은 처음이다.
민박집의 딸인 명자가 물질을 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우리의 이 아가씨는 해녀체험에 나섰다.

겁도 없이...

 

 

오전 10쯤
동네 아줌마들은 손에손에 바구니와  갈코리를 들고
그리고 장작을 들고 부두로 나와 배를 탔다.
배는 해녀들을 싣고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회장격인 아줌마가 젊은 해녀를 향해 말한다.
"빠저버러"
그러자 한 아줌마가 물속에 들어가서 잠수를 하더니 물위로 나오면서
"#$^&**%$"하고 말하는데 아가씨는 도저히 그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명자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지금 이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은
물의 온도를 살피는 것이고 물이 너무 찬곳에는 전복이나 멍게를 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곳에 다다르자 해녀들은 일제히 물속에 들어간다.
배 위에는 달랑 아가씨 혼자 남아서 파도에 흔들리며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이다.


얼마 후 길고 긴 휘파람 소리를 내며 해녀들이 물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간다.
어떤이는 빈 바구니로, 어떤 이는 멍게와 전복을 따서 올라온다.
물이 차다고 오들오들 떨면서 배 위에다 불을 지핀다.
하늘에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데도 파아란 입술을 달달거리며
해녀들은 불을 쬐며 몸을 녹인다.

 

아침에 장작을 가지고 배를 탄 이유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깊은 바다 속은 물이 대단히 차단다.
물질을 하면 금방 춥기 때문에 몸을 녹이려면 불이 필요한 것이다.

몸을 녹이면서 아가씨를 쳐다보더니 또 뭐라고 막 떠들어대는데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 아가씨는 답답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다시 명자에게 물었다. 명자는 웃으며 말한다.
"언니가 예뻐서 며느리 삼았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망망대해에서 혼자 파도에 흔들리며 배 위에 있는것 보다는

섬에 있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우리의 아가씨는 마침 배옆에 있는 무인도를 발견하고 그 섬에 내려줄것을 부탁했다.
해녀들도 배위에 혼자 있는 것 보다 그게 좋을 것 같다면서
저녁때 물질 다 하고 돌아갈 때 데릴러 오겠다고 하고
아가씨를 무인도에 내려주었다.

말이 무인도이지 아주 작은 바위산이다.


산 중턱에 염소 한마리가 외롭게 풀을 뜯고 있지만

그곳까지 아가씨는 올라갈 수가 없어
턱을 바쳐들고 목을 뺐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지금 눈에 보이는 생물체 염소
한마리가  전부이다. (알고보니 염소가 수십마리 있다고 했다.)

 

아가씨는 혼자서  바위 틈에 붙어있는 조개를 따보기도 하고,
바위 위를 기어다니는 이상한 물체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물 속에서 놀고있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안간힘도 써 보고
바위에 붙어있는 이끼 비슷한 해초를 따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돌섬에서 그 놀이도 금방 따분해지고 말았다.


아가씨가 혼자 놀기 시작한지 불과 한시간도 되지 않았을텐데
아가씨는 벌써 심심해 하고 또 따분해 졌다.
겨우 묵주기도 5단을 했는데 더 이상 기도하고 싶어하지도 않고있다.

라디오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MP3도 없던 그 옛날 말도 통하지 않는 염소와 놀 수도 없고
사람의 그림자 조차도 보이지않는 망망대해의 조그만 돌섬에 갇힌 아가씨...

지루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는가 했더니 이젠 배가 슬슬 고파오고 목이 바삭바삭 말라온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 한여름의 태양은 이글거리며 내려 쬐이는데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 한그루 없고, 바람도 한점 불지 않는 지독하게 더운 무인도다.
그러하니 수영복 밖으로 드러난 살갗은 타는것 같이 따갑고
모자를 썼지만 땀은 줄줄 흘러내렸다.
파라솔이라도 가져왔으면 좋으련만...
물한방울도 없는 무인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인도,


저~~~ 멀리 지나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배는 아가씨를 버려둔체 그냥 항구로 돌아가고....
물질이 끝날려면 아직도 네시간은 족히 기다려할것 같은데...

무인도라고 해도 그늘이나 동굴이 있고, 사람이 누워서 쉴 공간이라도 있어야지


뜨거운 바위 위에서는 누울수도 없다.

야자수나 과일 나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옮겨가지초자 힘든 바위섬에서
아가씨는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모든게 자신이 없다.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 뿐이다.


그 기도는 묵주기도 염경기도가 아니라 참으로 절실한 현실기도 말이다.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현실!

지금의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란
이 작은 무인도를 탈출하는 방법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아가씨의 애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마침 낚싯배 하나가 아가씨의 옆으로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아가씨는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서 흔들며 들리는지 않들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죽을 힘을 다해 소리쳤다.
"저기요... 저 좀 태워주세요... "하고...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탈진한 상태지만 아가씨는 무인도의 탈출에 성공했다.

 

평생 기억에 남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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