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따라

노수사와 아가씨 2

마가렛나라 2008. 4. 7. 14:54

이른 새벽부터 톱질하는 요란한 소리에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니 아가씨가 잤던  방 옆이 커다란 제재소였다.
허리가 굵은 통나무를 자르는 제재소...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고 한낮에는
지치니까 쉬는 모양이다.
새벽 내내 톱질하는 소리가 그래서 요란했던게지...

 

잘 자고 일어나서 수사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머지 일행을 찾아
수도원으로 갔다.
그래도 아침은 수도원에서 간단한 빵과 수프로 떼우고 함께 만난 즐거움에,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설레임에 기뻐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목포로 갔다.

 

목포하면 예나 지금이나 유달산이 최고다.
35년전 목포는 지금 보다 훨씬 작은 도시였다.
그래도 유달산에서 내려다보는 전경과 야경은 좋았다.

 

어느 지역에서든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바라다 보면 기분이 좋다.
앞이 탁 트여서 잘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발아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저녁식사는 무엇을 먹었는지 아가씨는 기억에도 없다.다만 이 밤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걱정뿐이다.

 

목포에 있는 마리아니스트 수도원에서 원장 신부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객실에서 아가씨가 잘 수 있다는 원장신부님의 말씀에 이 아가씨는 모든 피곤이 다 풀리는듯 좋아서 조잘대고 있었다.

 

 한밤중
고요한 수도원에서
모든 수사님들이랑 신부님들은 다 이층으로 올라가고  난 뒤에
아가씨는 객실의 테이블을 치우고 그 자리에 삼단요를 깔고 누웠는데
캄캄한 어둠 속에 빨간 조명등이 도깨비등처럼 느껴지면서 서서히
공포가 몰려오자 수십번 이마에 성호경을 그었던 기억밖에 없단다.

 

수도원의 아침 식사는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식빵과 계란 후라이, 우유커피...
일본인인 노마수사님은 아주 젊고 미남이시라 아가씨의 눈길이 자꾸만 노마수사님께 갔다.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필리핀 수사님도 계셨는데 이름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단다.
당연하지...
35년전 일이니까...

 

선창으로 나아가서 홍도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니 흑산도까지 가면 흑산도에서 홍도가는 통통배가 있다고 한다.일행은 배를 타고 흑산도 부두에 내렸다.
한방에 목포에서 홍도로 가는 배는 없다.
그래도 다행이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금방 작은 통통배가 와서 우리는 홍도에 무사히 내려 주었다.

 

홍도에서는 민박을 구했다.
그시절 홍도에는 여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집이나 다 민박을 하고 있었다.명자라는 열일곱살짜리 딸이 있는 집이라 수사님들은 세분이서 한방을 쓰고
그 옆방에서 명자와 아가씨가  함께 지냈다.

 

하늘은 맑은 공기의 덕으로 하얀 뭉게구름을 그리며 파아랗게 펼쳐지고 수정 보다 더 맑고 푸르고 깊은 바닷물은 聖水 같았다.
모래랑 작은 돌맹이랑 바닥이 다 보이고 물고기들도 다 보이는 투명한 물빛..
그 물빛이 좋아서 빠지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느라고 아가씨는 끙끙 앓고 있었다.

 

누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네 총각들이 숭어며 우럭을 작살로 잡아와서는 자랑스럽게 수사님들께 내밀었다.할아버지 수사님은 아가씨에게 찌개를 끓이라고 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매운탕을 끓여본 적이 없는 이 아가씨는 동네 총각들이 잡아와서
손질해 준 그 물고기를 냄비에 넣고 파며 풋고추, 양파와 호박을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마늘을 다져넣고
찌개를 끓었는데 그 맛이 어찌나 좋은지 달콤하기도 하고 구수하기도 한것이 생전 처음 먹어보는 기가 막힌 맛이었다.
싱싱한 생선은 끓이는 비법이 따로 있지않음을 이 아가씨는 금방 배웠다.

 

밤에는 아가씨랑 명자랑 둘이서 캄캄한 뒤뜰에서 찬물로 목욕을 하고 시원한 부채로 바람을 흔들며 동네 총각들이 들려주는 홍도의 신기한 얘기에 시간을 보내고 낮에는 물질하는 해녀들과 함께 배를 타고 ...

 

지금 생각해도 멋진 낭만이 살아숨쉬는 추억이다.

 

해녀들이 다 물질하러 물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빈 배에 혼자 남아있던 아가씨가 심심해서인지
작은 무인도에 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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