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사님과 아가씨
1974년 여름
미모의 젊은 아가씨가 수도원을 방문하다가 우연히 수사님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당시 백발이 성성하신 미카엘 수사님은 연세가 62세였고
약간 통통하신 스테파노 수사님은 52세이시고
젊은 스테파노 수사님은 아가씨와 동갑네기였다.
이렇게 네명이 한조를 이루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해는 유난히 무더웠던 해였다.
말그대로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한명의 아가씨와 세명의 수사들이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들이 정한 여행지는 울릉도였다.
35년 전
여행을 하기가 그리 쉬웠던 시절이 아니었다.
포항에서 배를 타야 울릉도를 갈 수 있었다.
포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선착장에 가서 울릉도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았더니
폭풍이 불어서 파고가 심하여 며칠째 울릉도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혹시나 내일은 배가 뜰 수 있을려나해서 포항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포항 칠포리 해주욕장에서 오후 내내 놀았다.
저녁이 되자 여관방을 하나 구해서 자기로 하고 방에 들어갔다.
(여관인지 민박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커다란 모기장이 쳐저있는 큰방이었다.
제일 가장자리에 아가씨가 눕고, 그 옆에 할아버지 미카엘 수사님이 눕고, 그 옆에 스테파노 수사님이 눕고
제일 끝에 동갑내기 수사님이 누워서 모두가 아주 달콤한 잠을 잤다.
아침을 먹고 다시 선착장에 갔으나 그날도 배는 뜨지를 못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울릉도를 포기하고 기수를 돌려 홍도로 가기로 했다.
홍도로 향하면서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광주였다.
광주 시내를 구경하고 광주 가톨릭 대학도 방문하고 총장 신부님께 인사도 하고 복지시설인 갱생원도 들렸다.
지금은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지만 그 시절에는 시설이 별로 없었고
부모들도 장애인이 태여나면 버리거나 숨겨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갱생원을 떠나 고난의 예수회 수도원에 들려서 저녁을 먹었다.
디저트도 잘 먹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이 수도원에서는 여자를 재워줄 수가 없다고 한다. 금녀의 집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가막히고 가슴이 철렁하면서 멍하니 정신이 없었다.
이 도도한 아가씨는 세상에 태여나서 단 한번도 혼자서 여관방에 자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 밤을 혼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암담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 가가막힌 현실앞에 할 말을 잊은듯...
잠시 후 아가씨는 정신을 가다듬고 수사님들께 말했단다.
"저는요 세상에 태여나서 한번도 여관에서 혼자 자본적이 없어요. 저는 혼자서는 여관에 못갑니다.
그러니까 미카엘 수사님께서 저와 같이 가 주셔야 합니다."
아가씨가 막무가네로 떼를 쓰니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할아버지 수사님이 따라나섰다.
수도원 가까운 곳에 있는 여관을 찾아서 들어갔다.
방은 깨끗해서 좋았다.
세수를 하고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우면서 아가씨는 말했다. "수사님, 안녕히 주무세요..."하고...
수사님이 따라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담고 한 말이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아가씨는 피곤에 지쳐 잠에 골아 떨어졌다.
새벽녁에 요란한 기계 소리에 잠을 깼다.
굵은 통나무를 기계로 톱질하는 아주 아주 요란한 소리가 잠을 깨운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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