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네랑 헤여진지가 벌써 오년이 되었다.
참 긴 세월 같지만 또 눈깜빡 사이가 되는것도 같은 오년이다.
오년만에 만난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수원을 출발한 시간은 12시 10분
갑자기 문경으로 오라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문경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해서 문경가는 길과 보길도 가는 길을 인테넷에서 찾아
프린트를 해 가지고 왔다.
문제는 그 지도를 보면서 잘못된 이정표와 지도와의 차이로 그만
가야할 길을 지나쳐버렸다.
45번 도로를 따라 가야 빠른 길인데
원주로 가서 다시 충주로 가는길로 들어섰더니 그야말로 진퇴양난...
꼬불꼬불 손길을 돌고돌아 가다가 보니 야동 초등학교도 나오고 야동공소도 나왔다.
가도가도 충주는 나오지않고 배에서는 기타와 바이올린이 된장을 끓이는데
배는 고파오고 시간은 점점 가고...
세시 반이 되어서야 수안보에 도착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이 푸짐한 밥상을 보라...
역시 먹는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나보다.
다프네의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다프네가 사진 찍지말라고 했는데 내가 그냥 팍...
청국장에 계란찜에 생선구이에 내가 좋아하는 상추쌈에...
그런데 이 푸짐한 밥상이 5000원이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주인에게 잘먹었다고 몇번씩 인사를 했다.
파라과이에서 해외교포사목을 하고 오신 신부님께서
문경에 계시다는 다프네의 말을 듣고 전화를 드렸다.
마침 안동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올테니 6시에 만나자고 하신다.
언니를 만나려고 전화를 했더니 언니는 기다리다 김천으로 간다면서
김천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아무래도 신부님을 뵙고가야할 것 같아서
언니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음 우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문경세재로 갔다.
먼저 모노레일을 타고 촬영장으로 올라갔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밤이 오려고 한다.
서둘러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몇년만에 보는 눈인지라 다프네는 좋아서 눈위를 걸으며 기뻐하고 있다.
가마도 타보고...
곡식을 까부는 키 밑에서 사진을 찌긱도 하고
눈아래 펼쳐진 하얀 산과 동네와 들을 보면서 머리속에 수없이 많은 영상을
그녀는 찍고 또 저장하고 있었다.
고드름을 본지가 얼마만인지 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사진으로담았지만
해가 지고 없어서 밝게 나오지는 않는다.
이곳에 오면 모노레일과 촬영장과 탄광박물관이 한 묶음으로 표를 팔고 있어서
여기까지 둘러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컸다는 은성탄광.
1979년 10월 16일에 이곳 갱이 무너져서 40명이 죽었으나
그날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사건은 역사속에 아주 조용히 묻히고 말았단다.
갱도를 따라 들어가면 센서가 움직이면서 가는 곳마다 현장감 있게 성우들이 외치는 소리가 드린다.
"어이, 김씨, 밥먹고 하지"
"으~~아~악, 갱이 무너졌어. " 등등...
어두운 땅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탄광을 캔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소리없이 순직한 그분들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잠시지만...
사제관에서 신부님을 만나 자 마자 두분은 허그를 하고
그때부터 아르헨티나의 얘기에 꽃을 피우셨다.
나는 그저 웃으며 듣기만 했지만 그시간이 행복했던 것은
두분과 함께 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저녁은 나중에 먹자고 하시며 우리보고 배고프냐고 하신다.
우린 불과 두시간 전에 점심을 먹었으니 배가 고플리가 없지...
그럼 저녁 미사를 하고 밥을 먹자고 하신다.
이런 횡재가 어디 또 있을까...
그런데 다프네가 성사를 봐야 한다고 했다.
신부님께서 고해실에서 다프네랑 만나셨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히히 웃길려고 한소리다.)
작은 시골 성당에 30명은 좋게 되어보이는 신자들을 보면서 놀랐다.
평일 미사에 이렇게 많은 신자들이 오신것을 보고 말이다.
성당 앞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유난히 추운 날씨였지만 유난히 따뜻한 밤이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우린 고령에 도착했다.
다프네는 서울로 가야하는지 결정을 못해 아침을 먹고 무작정 터미널로 갔다.
시골이라 서울행이 바로 5분전에 출발을 했고 다음차는 2시 50분에 있다.
다프네는 다시 서울로 전화를 하더니 그냥 보길도로 가자고 한다.
늦게 출발을 해서 땅끝마을에 도착을 하니 이미 해가 바닷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서둘러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
우리가 땅끝에 서 있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바다는 볼것을 제공하지 않았다.
땅끝마을 하얀짐에서 여정을 풀었다.
보길도는 8시 20분에 출발하는 배가 있어서 다행히 그 배를 탈 수 있었다.
보길도에 가는 동안 배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 이유는 내차는 키가 낮아서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배 안뿐이다.
아기를 위해 추럭으로 올라갔다.
젊은 추럭기사 아저씨는 땅끝마을 해남의 볼거리들과 먹거리를 알려주었다.
바다가 환히 보이는 곳에서 아가는 빙긋이 미소를 띠며 바다를 구경하고...
보길도에 도착하여 젤 먼저 간곳이 예송리 바닷가...
지금 사진에서 보이는 이곳은 파도가 칠때마다 자갈에 부서지며 내는 소리가 일품이다.
짜르르르륵, 자르르르륵....
봄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무나 바쁜 우리 종달새님이 생각이 나서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하고...
고산 윤선도가 살았다는 세연정.
그곳 돌담길에서 멋쟁이 윤선도를 생각하며...
추운 날씨에 세연정도 살짝 얼었다고 하지만 여기는 정말 따뜻한 남쪽나라다.
윤선도 그분이 살아계신다면 정자에 앉아서 보성 녹차로 빚은 술을 마시며
오우가를 읊조리고 싶다.
오우가가 탄생 될 수 있었던 그 곳이 여기다.
세연정 안의 동백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보길도의 땅끝에 서면 제주도도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대기 오염으로 지금은 일년에 몇번 밖에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아까 타고 온 배의 선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작은 섬마을에 불이 난것 같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는다.
무슨 연기가 저렇게 나는지 알 수없지만 큰불이 아니기를 빌며 지나갈 뿐이다.
보길도로 갈 때는 땅끝마을에서 탔지만 돌아갈 때는 완도로 해서 갔다.
완도 청해진 포구는 촬영지로 유명하다.
너무나 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태왕사신기도 이곳에 찍었고, 주몽, 이산, 해신, 신돈, 서동요, 청해의 꿈, 순옥이, 심청의 귀환
그리고 지금은 대왕세종을 찍고 있었다.
분명히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으나 촬영중이라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표소에 들어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대충 보는걸로 만족하고 돌아섰다.
이 아가씨들은 촬영하다말고 양지쪽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한장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입고있던 웃도리를 멋고 기꺼이 모델을 해주셨다.
배려하는 마음이 예뻤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차일 앞에서 왕과 궁녀들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따뜻한 남쪽나라.
들에는 배추가 통째로 심어져있고 파아란 시금치도 보인다.
도저히 겨울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따뜻한 이곳.
아직도 들국화가 피고지고한다.
서울로 가야한다는 다프네를 광주 터미널에서 내려주고 헤여졌다.
오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다프네에게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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