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손희송주교님의 추모글(유경촌 팀테오주교님)

마가렛나라 2025. 8. 19. 10:45

손 희송 주교님이 쓰신 추모글

adieu!

프랑스어 'adieu'(아듀)라는 인사말에는 "하느님의 곁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영원한 이별이나, 다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 사용되며, 깊은 감정과 신앙적 신뢰를 내포한다고 한다고 한다. 내일, 8월 18일 장례 미사를 지내면서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에게 ‘아듀!’라고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기억의 사진첩’을 만들어 선물로 주고 싶다. ‘인생 졸업’하는 그에게 작은 마음의 선물로 말이다.

● 그를 처음 본 것은 1981년 가을이었다. 그해 2학기에 나는 신학교로 돌아왔다. 신학대학 4학년 졸업하고 사병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원 1학년으로 복학했다. 당시에 그는 1학년 신입생이었다. 아마도 가을 전교생 등반 대회였을 것이다. 귀교 길 버스 뒷자리에서 잠든 그의 모습을 보았다. 술 한잔하고 발그레해진 얼굴로 곤히 자는 모습이 천진한 아이 같았다. 소년 다윗처럼 말이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1사무 16,12)

● 복학한 다음 해인 1982년 여름에 나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유학을 나갔다. 몇 년 후인 1988년 그가 독일 뷔르츠부르크로 유학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반가웠다. 두 도시의 거리가 멀어서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름 방학 때 유럽에서 유학하는 신학생, 사제들의 모임이 있어서 그때마다 반갑게 만나고는 했다. 그가 부제품을 받을 때는 인스브루크에 유학 중인 사제, 신학생들과 함께 뷔르츠부르크에 갔고, 그는 종종 손님들을 모시고 인스브루크에 오기도 했다. 귀찮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군소리 없이 척척해 내는 그의 모습이 참 대견했다. 하느님도 이 아름다운 청년을 ‘사랑스러운 눈길’(마르 10,21)로 바라보셨을 것이다.

●   1992년 9월 나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2년간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다가 대신학교 상주 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몇 년 후에 그도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서 짧게 본당 사목을 하다가 1999년에 대신학교로 들어왔다. 학생으로는 선후배로 만났지만, 교수로 함께 일하면서는 든든한 동료처럼 느껴졌다. 그가 2008년에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같은 길을 가면서 많은 추억거리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5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개교 150주년 행사를 준비했던 시간이다. 당시 나는 교학처장이었고 그는 교학 부처장(학생처장)으로서 행사 준비의 실무를 맡은 내게 많은 힘과 도움이 되어 주었다. 개교 150주년을 기념해서 KBS에서 최초로 신학교 생활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호흡을 맞추어 가면서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그 덕분에 극찬을 받은 작품 <영원과 하루>가 나올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150년사》와 관련 화보 책이 발간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밤을 새워가면서 꼼꼼하게 작업하고, 안식년에도 편찬 작업에서 손을 떼지 않을 정도를 헌신적으로 일했기에 신학교 관련 역사 자료가 집대성될 수 있었다. 그 시절에 그는 주님께 시중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마르타(루카 10,40)가 아니었나 싶다.
  
● 그는 대신학교에 소중한 ‘일꾼’이었다. 하지만 교구에도 필요한 인물이라서 2008년에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4년 후인 2012년 여름에 내가 사목 국장으로 발령을 받아 서울대교구청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대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서로 호흡을 맞추었던 사이라서 반갑게 재회했다. 아쉽게도 동행의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그가 2013년 8월에 명일동 본당 주임 신부로 임명받아서 교구청을 떠났기 때문이다. 동행의 길이 이제는 갈리나 보다 했는데, 그해 말에 그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받으면서 다시 교구청으로 돌아왔다. ‘자연적 질서’에 따라서는 내가 선배였지만, 이제는 그가 ‘거룩한 질서’에 따라 내 선배가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 그와 내가 같은 길에서 다시 또 만난 지 1년 반 만인 2015년 7월 내가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받았다. 나는 그와 함께 ‘한국 주교단’의 일원이 되었으니, 더 밀접하게  동행할 운명이 된 것이다. 2016년 여름에는 내가 교구 총대리 직무를 맡게 되어 산적한 교구 일을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자 노력했다. 복잡다단한 일로 함께 신경 쓰고, 같이 고민하며, 서로 속마음을 나누면서 9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길을 갔던 엠마오의 두 제자(루카 24,13-14)처럼 말이다.

그는 다른 이들의 짐을 들어주는 것을 기꺼이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져야 했던 주교직은 많이 버거워했다. 아마도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는 신학생 시절부터 가난하게 살기를 원했고, 어렵고 힘든 이들 곁을 지키고자 했으며,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빨래는 물론 방 청소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했다. 주교가 된 후에도 이런 모습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철저히 그렇게 살고자 했다. 주교에게 배정된 전용 차량은 최소한으로만 사용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고집하는 그가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좀 맡기고 내려놓고 여유를 갖고 살면 좋겠다, 싶어서 잔소리도 했지만, 변함이 없었다. 맑고 순수한 그 모습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너무 팍팍하게 사는 듯해서 안쓰러웠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에서 임명받은 주교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Kid(아이)’였나보다.

● 2024년 3월에 나와 그의 길이 다시 갈리게 되었다. 내가 3대 의정부 교구장으로 임명을 받아 서울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그의 암 발병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적적인 치유를 바라면서 새 임지로 향했다. 2024년 7월에 시술을 받으러 서울 성모병원에 며칠 입원을 했을 때 마침 옆 병실에 있던 그를 만났다. 그는 투병 과정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와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울먹이면서 이야기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했다. 문득 그의 그런 모습이 고통받는 의인 욥의 모습과 겹쳤다.

∙8월 14일 오전에 정기 검진차 서울 성모병원에 갔다가 그의 병실에 들렀다. 의식 없이 힘겹게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마지막까지 청각은 남아있다기에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아직도 마음의 짐이 있으면 하느님께 맡기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그리고 약 12시간 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 시작되고 채 30분도 안 된 시각에 그는 우리를 떠나갔다. 성모님과 함께 승천하여 그분의 손을 잡고 영원한 행복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그곳에는 하느님 친히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과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 21,4)  

● 말이 통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훌쩍 떠나버리니 인생의 쓸쓸함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가 더는 그 힘든 병고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데에서 애써 위로를 찾는다. 천국에도 세상에서처럼 순산과 난산이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명을 다해 편안하게 눈을 감고 천국에 가면 순산(順産)이요, 병고를 겪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어서 천국에 갔다면 난산(難産)이 아니겠냐고. 순산으로 태어난 생명도 반갑지만, 난산으로 태어난 생명은 더 반갑게 마련이다. 그는 난산으로 천국에서 태어났으니, 하느님께서 그를 더욱 반갑고 기쁘게 맞이해주시지 않을까? 환하게 웃으시면서 “착하고 성실한 종아!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3)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품어 안아 주시리라 믿는다.

유 주교님! 수고도 많고, 고생도 많았어요.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그 시간이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내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반짝일 것입니다. 먼저 가서 자리 잘 잡아놓으세요.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때 그곳에서 다시 반갑게 만납시다. 우리가 기쁘게 재회할 수 있도록 하느님 곁에서 열심히 기도해 주세요. 나도 여기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adieu!

'북카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감사십계명  (0) 2026.02.15
시를 읽는다  (0) 2025.08.23
파가니니의 일화  (0) 2025.04.03
억수로 재수없는 사나이  (0) 2025.01.18
종달새의 최후  (0) 2025.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