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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코와 반제티

마가렛나라 2013. 2. 5. 10:13

사코와 반제티

 

책속에서
왜, 오늘 한국 사회에서《사코와 반제티》인가!
“첫째, 지금은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는 미국 사회이지만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반공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좌파 사상과 활동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이 체제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을 초래하는지를 검토하지 않고 바로 처벌하였고,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공정한 재판의 원칙을 압도하기도 하였다. 흔히 ‘이민자의 천국’으로 이해되는 미국이지만, 업턴 싱클레어가 소설 《정글》에서 묘사한 것처럼, 당시 이민자 집단은 철저한 핍박과 착취의 대상에 불과하였다. 하물며 반체제 사상을 가진 이민자라면 어떠했을까? 둘째, 사코와 반제티 사건은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경고를 보내고 있다. 50만 명에 육박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산업의 필요에 따라 이곳에 와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폭력, 억압, 차별, 착취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주도자는 즉각 체포, 추방되고 만다. 이주노동자의 각종 인권을 보장하고, 범죄 혐의를 받는 이주노동자에 대하여 공정한 수사, 기소,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국가와 사회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국판 사코와 반제티를 보게 될 것이다. 20세기 초 ‘아메리칸 드림’의 그늘 속 두 이탈리아계 미국인 노동자의 삶에 대한 이 책이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21세기 한국 사회에 온 이주노동자의 삶과 인권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한국어판 서문에서 (조국)

“사코와 반제티라는 이름은 여태까지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혹한 시대에 이 평범한 두 사람의 이름이 전 세계를 함성으로 뒤덮음으로써 역사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하는 걸 보며 우리는 놀라움과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언제나 정의를 갈구해 왔음을, 고난 받는 형제에게 손을 내밀어 왔음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되새기며 가슴이 묵직해질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많은 사코와 반제티를 알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름은 다르겠지만 저마다 알고 있는 사코와 반제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의를 요구하는 한, 사코와 반제티의 전설은 영원히 재생산되리라.”―옮긴이의 말에서 (이수영)


* 출판사 서평
‘미국의 아테네’ 보스턴과 인류의 재판
1927년 8월 메사츠세츠 주 보스턴, 두 사내의 처형이 임박해 오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의 사형 반대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파리에 있는 미국 대사관 밖에는 탱크가 출동하여 성난 군중을 막아섰다. 런던의 하이드파크에는 시위자들이 군집했고 제네바에서는 미국 상품이 판매되는 가게와 영화관이 공격당했다.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는 동맹파업이 벌어졌고 수송이 중단되었다.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시청 바깥에서는 미국 국기가 불에 탔다. 시드니, 부쿠레슈티, 베를린, 암스테르담, 로마, 도쿄, 부에노스아이레스, 아테네, 프라하, 마라케시의 거리에 흥분한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아인슈타인은 곧바로 쿨리지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고,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미국 정부를 향해〈유럽 노인의 호소〉를 발표했다. 작가 존 더스 패서스는 ‘두 개의 미국’을 선언했다. 1920년대 미국은 베이브 루스와 찰스 린드버그, 잭 댐프시가 화제의 중심이던 ‘재즈 시대’였다. 가전제품과 텔레비전이 보급되었고 대중문화와 스포츠가 유행을 선도했다. 전국의 잡지 판매대에는《리더스 다이제스트》(1922), 《타임》(1923) 같은 새로운 잡지와 통속소설들이 넘쳐 났고 연예 잡지들은 유명인과 스타의 산실인 할리우드의 뒷얘기를 실었다. 한편 1920년대 미국은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 혁명가들이 활약하고 노동운동이 확산되던 ‘적색공포’의 시대이기도 했다. 1919년 5월 1일 존 록펠러, J. P. 모건, 미첼 파머를 비롯한 거물급 인사들에게 폭발물이 배달되기도 했다. 곧이어 법무장관 미첼 파머와 에드거 후버(나중에 FBI를 창설하여 사망 때까지 국장으로 재직)의 지휘 아래 좌익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파머 일제검거’ 광풍이 몰아쳤다. 버트런드 러셀, H. G. 웰스, 마리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월터 리프만, 업턴 싱클레어, 존 듀이, 버나드 쇼, 아나톨 프랑스, 로맹 롤랑, 이사도라 던컨……. 당대의 명망가들이 대거 구명 운동에 뛰어들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전기의자에 앉게 된다. 오랫동안 두 사람을 보아 온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교도소 바깥에는 기마경찰과 무장한 경관들이 ‘사선’을 지키고 지붕 위에는 기관총이 설치되었고 커다란 탐조등이 그 주변을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사코와 반제티는 교도소 신부의 ‘구원’을 정중히 거절하고 마지막 편지를 썼다. “친구들과 동지들, 이 재판의 비극은 막바지에 다다랐으니 이제 모두 한마음이 되십시오. 죽는 건 우리 둘뿐입니다. 우리의 이상, 우리의 동지인 셀 수 없이 많은 여러분은 살 것입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고통, 우리의 슬픔, 우리의 오류, 우리의 좌절, 미래의 전투를 위한 그리고 위대한 해방을 위한 우리 열정을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이 암흑 같은 비극의 시간 속에서 모두 한마음이 되십시오.”
엄청난 군중이 맨해튼의 유니언 광장에 모여들었다. “사코와 반제티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뉴욕 월드》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군중들은 크게 울부짖었다. 수십 군데에서 여성들이 기절해 쓰러졌고 어떤 이들은 옷을 찢고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람들은 서로 기대고 흐느껴 울었다.”

두 이탈리아인과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
뒷날 늘 이름이 붙어 다니게 되는 사코와 반제티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고된 노동의 삶을 보내고 있었다. 니콜라 사코는 1908년 미국으로 건너와 공사장과 철공소에서 일하다 구두 공장에서 제화공으로 일했다. 바르톨로메오 반제티도 같은 해 뉴욕으로 와 식당에서 접시를 딱고 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되어 생선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두 청년은 휴일 오후가 되면 루이지 갈레아니를 따르는 무정부주의 조직 ‘그루포 아우토노모’ 모임에 나갔고, 무정부주의 신문《크로나카 소베르시바》를 구독하고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체포될 당시 반제티는 대중 집회에서 발언할 연설문을 소지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심문 과정에서 무정부주의 동료들의 활동을 은폐했다. 1920년 4월 15일,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도시 브레인트리의 제화공장에서 경리와 급여 수송원 두 사람을 살해하고 현금 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곧 두 사람은 강도 살인자로 지목되어 체포되고 재판이 시작된다. “내 자유는 모든 이의 자유 속에 있고, 내 행복은 모든 이의 행복 속에 있다”는 신념을 가졌고, 감옥에서도 ‘일하지 않는 두 손’을 부끄러워했던 두 사람은 노동자의 급여를 강탈한 강도 살인자로 둔갑한다. 재판장 웹스터 세이어는 ‘무정부주의 놈들’이라는 말을 내뱉고, 선정된 배심원들에게 ‘미국인이라는 애국심을 갖고 나라의 부름에 응한 진정한 군인’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공공연히 강조했다. 미국 사회에서 달갑게 여기지 않은 이탈리아인이자 무정부주의자에게 법은 공정하지 않았다. 공정하지 않은 재판정 분위기에서 증인들의 모호한 진술과 피고에 대한 유도 심문으로 일관한 심리 속에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유죄 평결이 나왔고, 두 사람의 무죄를 입증하는 알리바이와 결정적인 증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몇 차례에 걸친 피고측 변호인의 이의제기도 모두 기각되었다. 공정하지 않은 재판이라는 여론이 들끓게 되자 최종적으로 메사추세츠 주지사는 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하버드대 총장 로렌스 로웰, MIT 총장 새뮤얼 스트래턴, 로버트 그랜트 판사로 구성된 3인위원회를 구성해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매사추세츠는 미국 탄생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던 뉴잉글랜드의 중심이었다. 위원회는 유죄를 다시 한 번 확정했고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법정의 권위는 지켜졌다. 감옥 안에서 사코는 단식투쟁을 했고 반제티는 자서전 《어느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쓰며 자신들이 무죄임을 항변했다. 반제티는 《뉴욕 월드》와 감옥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이런 일이 없었다면 나는 길거리에서 무시당하면서 내 삶을 살다 마쳤을 것이다. 내세울 것 없고 이름 없는 실패자로 죽었을 것이다. 평생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죽어 가면서 하고 있는 일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관용을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날을 위해 싸우고 있다. 마지막 순간은 우리 것이다. 그 고통은 우리의 승리이다!”사코는 어린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울지 말거라, 단테야! 네 어머니가 일곱 해 동안 고생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니 아들아, 울지 말고 씩씩하게 어머니를 위로해 주고 소중한 이들을 사랑하고 곁에서 보살펴 드려라. 네 어머니와 함께 조용한 시골길을 산책하며 여기저기 피어 있는 들꽃을 꺾고 나무 그늘에서 쉬렴. 항상 기억해라. 행복한 유희 속에서 젊음을 보내기보다 박해당하고 희생하는 이들을 도와라. 네 용감한 마음과 선량함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리라 믿는다. 인생에서 너는 더 많은 사랑을 발견할 것이고, 사랑받게 될 거야.”

역사의 기억, 진실과의 대화
미국 법조계의 전설로 통하는 올리버 웬델 홈스, 클래어런스 대로, 루이스 브랜다이스 같은 법률가에서 미국의 첫 노벨 평화상수상자 제인 애덤스를 비롯하여 업턴 싱클레어, 유진 데브스,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 같은 이들이 이 사건의 중심에서 저마다 역할을 했지만, 1920년대는 이렇게 저물어 갔다. 이틀 밖에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사코와 반제티의 시신 안치소에는 10만 명이 넘는 추도객이 줄을 이었고, 며칠 뒤 열린 장례식은 경찰의 곤봉과 군홧발에 짓밟히면서도《보스턴 글로브》가 ‘현대에 와서 가장 대단한 장례식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한 행진으로 이어졌다. 유골 단지 두 개는 반제티의 여동생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 이탈리아로 갔다. 두 청년이 미국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거의 시민 전체가 기차역에 마중을 나왔고 사코와 반제티는 그곳에 영원히 함께 잠들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 거츤 보글럼(사코와 반제티가 처형된 1927년 8월 사우스다코타 러시모어 산에 역대 미국 대통령 네 사람 조각을 시작하고 있었다)은 그해 사코와 반제티를 기리는 동판 제작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2주기 추도식을 열고 보글럼의 작품을 기증하기로 결정했지만, 보스턴 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장소 사용도 불허되어 추도식은 결국 뉴욕에서 열렸다.
그 뒤 50년이 흘러 1977년 8월 23일,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클 듀카키스는 공식적으로 사코와 반제티의 명예회복을 선언했다. 오늘날 러시모어 산 조각은 미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유명하지만 같은 예술가가 만든 사코와 반제티 기념물은 여전히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미국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80년 만에 복원한 ‘사코와 반제티 사건’의 결정판!
이 책의 참고자료에 나와 있듯이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다룬 책은 그 동안 수십 권이 나올 만큼 큰 관심을 받아 왔다. 과거사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 형사법 재판 판례, 아나키즘의 역사, 미국 이주민의 역사, 사형제 폐지와 인권……. 여러 주제로 접근한 책들은 정의와 불의, 유죄와 무죄를 둘러싼 논란을 재생산하며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사코와 반제티 사건 80주기인 2007년에 출간되어 에드거 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워싱턴 포스트》올해의 책 역사 부문에 선정될 만큼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지은이 브루스 왓슨은 전작으로 1912년에 일어난 로렌스 파업의 전모를 밝힌《빵과 장비》를 썼고, 30년에 걸쳐 재판 기록과 당시 신문 기록을 뒤지고 생존자들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완성했다. 단순한 사건 나열이나 유무죄를 주장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사건의 전말을 실증적으로 복원해 냈다. 무엇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인 1920년대 미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폭넓게 서술함으로써 역사적 맥락에서 ‘사코와 반제티’ 사건의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

사코와 반제티를 위한 발라드
“드레퓌스 사건과 사코·반제티 사건은 모두 세계적인 누명 사건이지만, 특히 사코·반제티 사건은 가난한 이주 노동자가 희생자였다는 점에서 계급 대립의 격화와 노동자계급의 조직화, 아울러 노동시장의 세계화라는 1920년대의 시대상황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 두 사람의 비극을 조명하면서 자신의 ‘정의’의 내실을 되물었던 것이다.” ―서경식,《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

“사코와 반제티의 궁극적인 범죄는 아나키즘이라는 그들의 신념이었다. 이 사상은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진실, 즉 우리 모두는 하나이고, 국가의 경계와 국가끼리의 증오는 사라져야 하고, 전쟁은 용납할 수 없으며, 세상의 과실은 서로 나눠야만 하고, 권위에 대항한 조직적 투쟁을 통해서만 그런 세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실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번개처럼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하워드 진,《권력을 이긴 사람들》에서

“사코와 반제티의 비극적 사건을 인류의 양심에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이 두 사람은 아무리 완벽한 민주적 제도라도 결국은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민중의 고통과 슬픔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던 화가 벤 샨은 1931년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연작 그림을 선보였다. 현재 그림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0년 미국 포크송의 아버지라 일컫는 우디 거스리는 노래 11곡을 수록한 음반〈사코와 반제티의 발라드〉를 발표했다.
-줄리아노 몬탈도 감독이 만든 영화〈사코와 반제티〉는 24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흐르는 주제곡 ‘사코와 반제티를 위한 발라드’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하고 존 바에즈가 작사하여 직접 노래를 불렀다.
http://www.youtube.com/watch?v=gcgYwTnBIIQ&hl=ko
http://www.youtube.com/watch?v=J7mtmkoZG2Y&hl=ko

-구명위원회를 이어받아 매사추세츠에는 ‘사코와 반제티 기념사업회’(Sacco and Vanzetti Commemoration Society)가 ‘사코와 반제티의 날’을 제정하여 기념사업을 벌이고 사건과 관련된 기록물, 영화, 음악, 그림, 시, 책 등 모든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saccoandvanzetti.org


저자/역자 소개
저자 소개 : 브루스 왓슨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바텐더, 임시직 타자수, 공장 노동자로 일했으며 로렌스, 메사추세츠 등지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보스턴 글로브》《스미소니언 매거진》같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미국 이주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다룬《빵과 장미》(Bread & Roses)와 한때 세계 최대의 미국 장난감 회사 A. C. 길버트사의 창업주 얘기인《사내아이들과 장난감 제조법을 바꾼 사람》(The Man Who Changed How Boys and Toys Were Made) 같은 책을 썼다.

역자 소개 : 이수영
전문 번역가. 한 권의 책을 옮길 때마다 첫 번째 독자라는 설렘을 느끼며, 독자로서 느낀 감동을 잘 표현하고자 노력한다.《사라진 내일》《헬렌 켈러》《커트 코베인》《조화로운 삶의 지속》《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흡연의 문화사》《돌연변이들》(근간)《가벼운 공주》《황금열쇠》《어린이를 위한 불편한 진실》《마음이 머무는 곳》등을 우리말로 옮겼고,《빛을 훔친 까마귀》(근간)를 썼다.

목차
책을 읽는 이들에게

1부

프롤로그
1 착한 제화공과 가난한 생선 장수
2 강도 사건과 적색공포
3 ‘무정부주의 놈들’
4 진실과 거짓 사이
5 의심스런 증언들과 범죄의 재구성
6 피고 측 증인들
7 변론, 그리고 유죄 선고

2부
8 재심을 요구하는 양심들
9 향락의 시대, 잊혀 가는 진실
10 어둠 너머에 반짝이는 빛
11 이른바 ‘사실’이라는 것들
12 진범의 윤곽
13 스러진 ‘반역자들’에게 바치는 꽃
14. 인류의 심판

에필로그
올긴이의 말
연보
주석
참고자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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