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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받아들이는 훈련
우리가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길은 (1) 생명의 주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2) 자연 셰게를 통해서 (3) 꿈의 세계를 통한 무의식 작업을 통해서 이다. 이 세가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생명의 주체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생명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리면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버드나무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햇순이 새록새록 돋아 감람나무처럼 멋지고 레바논 숲처럼 향기로우리라. ∙∙∙나는 싱싱한 전나무와도 같고 너희가 파먹을 열매가 달린 과일나무와도 같다.(호세 14,6-7.9)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존재의 뿌리이신 하느님 아버지께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특별히 그분 앞
에 고요히 머물러 기도하는 삶과 미사성체안에서 주님의 성쳬를 모시는 삶, 그리고 고해성
사를 통한 방법이 있다.
이 세 가지 삶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왜 그러한 것들이 생명을 받
아들이는 데 그토록 중요한가를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1) 하느님 앞에 고요히 머물러 기도해야 한다.
우리 안에 생명이 넘치기 위해서는 생명자체이신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물러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느님 앞에 고요히 머무는 시간, 명상의 시간은 생명을 받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시간을 갖지 않고 일에 빠져 정신없이 산다면 그 사람의 생명력은 금방 고갈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어느 영성가가 말했듯이, 그의 처지는 마치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여 있는 웅덩이 물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고여 있는 웅덩이 물은 온갖 쓰레기가 쌓이고 모기와 벌레들이 서식하며 종래는 썪고 만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고요히 홀로 있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기 영혼의 바다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생명의 물을 막아버리는 자들과 같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여혼은 의심과 불안, 그리고 절제되지 못한 행위 등으로 탁해진다.
그렇게 탁해진 영혼은 빨리 지치게 된다. 한편 하느님 앞에 고요히 머물면서 기도하는 이들은 마치 자기 영혼의 바다에다 늘 새로운 생명의 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아서 몸이 정돈되고 생기가 넘친다.
그러한 사람들은 삶이 긴장되고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극복을 잘하고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 환경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균형잡힌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영혼의 바다가 늘 생명의 물로 넘치게 하려면 하느님 앞에 홀로 머무는 고요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루에 적어도 한차례는 기도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수의 신부인 존 포웰은 이런 말을 행다.
“하느님은 전기 콘센트 같은 분이다. 전기콘센트에는 전류가 흐르고 있어서 플러그를 연결만 시켜면 방도 환하게 밝아지고, 음악도 듣게 되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전력이 흐른다 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플러그를 꽂지 않으면 방은 어둡고 음악은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2) 성체를 모심으로써 생명을 받는다.
우리의 빵이 되기 위해서 “빵의 집”이란 의미를 지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6,56-57)
성체는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힘이다. 그래서 모든 성직자•수도자들은 하루 삶을 미사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권유받는다.
확실하게 생명을 받아 하루를 살고 싶은가? 그러면 매일 미사에 참례하여 설체를 받아 모시라. 주님의 성체를 모신 사람은 주님 안에서 살고, 주님의 그 사람 안에서 산다.
(3) 회심함으로써 생명을 받는다.
죄를 짓는 다는 것은 곧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요. 회심한 다는 것은 잃은 생명을 다시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받으려면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 마치 돌아온 탕자가 “아,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하면서 아버지께로 되돌아갔듯이, 진심어린 회심은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임이요, 생명의 성장이다. 존 포웰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은 빛과 온기로 밝음과 따스함을 주지만 인간은 태양을 피하여 어둠과 추위 속에 머물 수 있다. 인간이 추위와 어둠을 맛본다면 그것은 태양 탓이 아니라 태양을 피한 인간 탓이다.
태양은 언제나 변함없이 인간을 비추고 있기 떄문이다. 인간이 태양을 피해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듯이 하느님의 생명을 피하여 어둠과 외로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 생명과 사랑은 태양처럼 변함없이 퍼져 나오며 인간이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그 따스함과 밝음을 선사해 준다.”
이상 언급한 세 가지 방법, 즉 기도•영성•고해성사는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기 위해 참으로 필요한 방법이다.
비록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그 중요성만큼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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