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실

향주삼덕과 사추덕

마가렛나라 2008. 4. 26. 19:53
5편 수계생활

제2절 성덕에 이르는 기본 자세

세례성사로 하느님께로부터 신앙의 은혜를 받음으로써 우리 안에 초자연적 생명이 시작되었다. 이 초자연적 생명을 성장시켜 완덕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덕성(德性)들도 함께 갖추어야 열렬한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신덕(信德):우리 영성생활의 근원은 신덕[믿음]이다. 사도 바오로는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로마 1,17)라고 말하였다.
강한 믿음이 이해력과 합쳐질 때 우리의 생활은 빛과 열과 힘을 발하여 다른 덕성에로 인도될 것이다.

망덕(望德):영성생활이라는 긴 순례의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는 “아무쪼록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가득히 안겨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희망이 여러분에게 넘쳐 흐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로마 15,13)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로마 8,18)는 것과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 5,4-4)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기억하며 온갖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애덕(愛德):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 즉 애덕을 받았다. 사도 바오로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고린 13,13),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골로 3,14)고 말하였다.
애덕은 ‘여덟 가지 행복’[幸福宣言]의 정신으로 살게 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난해도 실망하지 않고 풍요로와도 교만하지 않게 한다. 또한 인간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더 귀하게 여기고,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갖게 하며, 이웃을 형제적 사랑으로 대하게 한다.

감사(感謝):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처지에 있다 해도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께 고마움을 느낄 때 신망애 삼덕은 더욱 증진되고 감사의 기도는 하느님의 은총을 더 풍성하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드려야 하겠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완덕에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마땅한 자세이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 5,16-18),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합니다”(2고린 9,15),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십시오”(에페 5,20)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하였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감사송)고 하며 하느님께 최상의 경배를 드리고 있다.

겸손(謙遜):자기의 재능이나 장점이나 덕행을 올바로 알고 이런 좋은 점들을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풀어 주신 선물임을 인정하는 겸손은 즐겨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수덕의 기본 덕성이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그 장점을 기른다.
겸손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48-49) 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께 봉사하셨다.

명랑(明朗):우리가 비록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고 있지만(마태 16,24 참고) 참진리이시고 참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께로 가고 있기 때문에 명랑하게 살아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비관론자(悲觀論者)나 염세가(厭世家)가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 흘러넘치는 낙천가(樂天家)가 되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라고 하였고, 사도 야고보는 “내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야고 1,2)라고 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기뻐서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4,13)라고 말하였다.

예지(Prudentia):매사에 좋고 나쁜 것을 식별하여 피할 것은 피하고 행할 것은 행하는 습성이다.
어떤 일을 성급하게 서두른다든가 정상은 살피지 않고 함부로 판단한다든가 의견을 자주 바꾸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탓이다. 또한 남을 속이기 위해 술수를 쓴다든가 세상 일에 지나치게 걱정한다든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꾀를 부리는 것은 지혜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정확히 판단할 줄 알고 사물의 진위와 가치를 바르게 식별할 줄 아는 예지가 있어야 한다.

정의(Justitia):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는 습성이다.
정의에는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어야 할 것을 주는 교환(交換)정의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역량에 따라 평등하게 주는 분배(分配)정의와 공익을 위해 사회에 환원해야 할 것을 환원하는 사회(社會)정의가 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존경을 드려야 하고, 자녀로서 부모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효성을 드려야 하며, 지위나 덕행이나 지혜가 탁월한 사람에게 드려야 할 존경을 드려야 한다.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밝혀야 할 때에는 밝히고,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며, 책벌해야 할 때에는 책벌해야 하고, 자기가 잘못했을 때에는 사과하고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다.

용기(Fortitudo):마땅히 행해야 할 좋은 일이면 비록 어렵고 괴로움이 따르리라고 예측되지만 그 일을 시작하는 굳센 습성이다.
어떠한 일이나 사건, 상황 앞에서 지나치게 무서워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덤벼 만용을 부려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정확한 관찰과 판단하에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면 된다는 확신과 항구심을 가지고 인내롭게 행하고 처신하되, 자만과 허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절제(Temperantia):사욕을 절제하여 중용을 지키는 습성이다.
지나치게 절제하여 기계처럼 되어서도 안 되고 유혹과 욕구를 따라 방종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면 음식은 건강유지에 알맞게 먹고, 술은 때와 장소에 따라 마시며, 성(性)의 사용도 부부의 사랑을 증진시킴에 합당해야 한다.
사람이나 물질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치장이나 생활양식을 단정히 하며 지나친 호기심을 삼가야 한다.

이상의 현명, 정의, 용기, 절제를 사추덕(四樞德)이라 한다. 이 사추덕은 자연적 윤리덕으로서 윤리덕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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